![[사설] 대명무사, 권력의 끝에서 다시 묻는 법의 얼굴 [사설] 대명무사, 권력의 끝에서 다시 묻는 법의 얼굴](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6/01/image-33.png)
대명무사(大明無私).
“밝은 법은 사사로움이 없다”는 뜻의 이 말은 『한서(漢書)·형법지(刑法志)』에 등장한다. 법이란 누구에게나 같은 얼굴을 가져야 하며, 지위와 공적, 과거의 명분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고대의 경계다. 2026년 1월, 전직 대통령에게 사형이 구형된 이례적 장면 앞에서 이 문장은 다시 현재형이 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사형 구형은 단순한 형량의 문제가 아니다. 전직 국가원수에게 적용된 법정 최고형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보여주는 증거일 수도, 반대로 정치적 격랑 속에서 사법이 시험대에 오른 순간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사안을 다루는 언론의 사설들은 하나같이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했다. 분노의 언어를 경계하면서도, 법의 판단이 정치적 고려로 흐려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설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첫째, 사법 절차는 철저히 법률과 증거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상징성은 동정의 이유도, 가중의 근거도 될 수 없다. 법정은 정치의 연장선이 아니라, 정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할 공간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 사건이 남길 제도적 교훈이다. 일부 사설은 “전직 대통령의 사법 처리 자체가 민주주의의 실패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권력의 행사 과정에서 제어 장치가 작동하지 못했던 구조적 결함을 성찰하지 않으면, 처벌은 또 다른 반복의 출발점이 될 뿐이라는 지적이다. 개인의 범죄를 단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제도를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셋째, 형벌의 최고 단계인 사형이 갖는 무게다. 다수 언론은 법률상 가능한 구형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생명형의 집행이 갖는 윤리적·국제적 논란을 함께 언급했다. 법적 판단과 제도적 논쟁은 구분되어야 하며, 재판의 결론이 사법 정의의 완결이지 사회적 분열의 출발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다.
여기서 다시 대명무사를 떠올리게 된다. 밝은 법은 개인에게 냉혹할 수 있지만, 공동체에는 유일한 신뢰의 근거다. 법이 권력자에게 관대하다는 인식이 쌓이면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반대로 법이 정치적 감정에 휩쓸린다는 의심이 커져도 사법의 권위는 회복하기 어렵다.
이번 사형 구형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결국 하나다. 이 나라의 법은 지금도 사사로움 없이 작동하고 있는가. 답은 판결문 속 문장뿐 아니라, 그 과정을 지켜보는 사회의 태도에서도 드러날 것이다. 정치적 진영 논리로 재판을 재단하려는 유혹을 이겨내고, 법의 언어로 법을 평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권력 이후의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다.
대명무사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다.
그 실천이 흔들릴 때, 법은 칼이 아니라 거울이 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것은 한 전직 대통령의 말로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법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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