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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보 차단 속 협상, 이란의 디지털 블랙아웃

【사설】 정보 차단 속 협상, 이란의 디지털 블랙아웃
강은 둑으로 눌러도 언젠가 길을 찾아 흐른다. 억지로 틀어막을수록 물살은 더 거세진다. 민심도 다르지 않다. 잠시 눌러 둘 수는 있어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국가는 힘으로 세운 벽이 아니라, 동의로 지탱되는 질서다. 지금 테헤란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차단 명령이 아니라, 시민의 목소리를 정면으로 듣겠다는 결단이다.

처음에는 소문이 돌았다. 그다음엔 연락이 끊겼다. 휴대전화 화면이 먹통이 되고, 메신저는 연결 중이라는 표시만 남긴 채 멈췄다. 총성이 있었다는 말도 있었고, 체포자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 역시 확인되지 않은 채 퍼졌다. 2026년 1월 이후 이란 전역에서 이어진 인터넷 차단은 단순한 통신 장애가 아니다. 시민의 눈과 귀를 묶어두는 결정이었다.

인터넷을 끊으면 상황이 진정될 것이라 계산했을 것이다. 정보가 흐르지 않으면 분노도 흩어질 것이라 판단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늘 계산표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길 위의 사람들은 서로의 표정을 보고, 불안을 나눈다. 말은 입에서 입으로, 골목에서 골목으로 옮겨간다. 통신망을 차단한다고 해서 의문까지 멈추는 것은 아니다.

테헤란은 오랜 세월 외부와 연결된 도시였다. 혁명 이전에는 ‘중동의 파리’라는 별칭으로 불렸고, 대학과 예술 공간이 밤을 밝히던 곳이었다. 1979년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 이어진 국제 제재는 도시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외부의 압박은 내부의 결속을 강화했지만, 동시에 다른 목소리를 좁혀 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결속은 경직으로, 경직은 불신으로 이어졌다.

최근의 차단 조치는 이런 누적된 긴장의 연장선에 있다. 경제는 오랫동안 제재에 묶여 있었다. 통화 가치는 불안정하고, 청년 실업은 구조화됐다.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푸념은 낯설지 않다. 젊은 세대는 이미 세계와 연결돼 자랐다. 작은 화면으로 바깥 세상을 보고, 비교하고, 질문한다. 그 화면을 끄는 선택은 단순한 기술적 조치가 아니다. 세대의 감각을 거스르는 결정이다.

공교롭게도 미국과의 핵 협상이 다시 논의되고 있다. 이란은 제재 완화를 원하고, 미국은 외교적 해결을 우선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군사적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협상 테이블과 군사 옵션이 동시에 언급되는 이중 구조 속에서, 이란 내부의 통제 강화는 국제 사회에 복합적인 신호를 보낸다. 밖으로는 협상을 말하면서, 안으로는 창을 닫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질서를 유지하려는 노력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방식이 과도할 때, 질서는 신뢰 대신 두려움 위에 서게 된다. 시위의 성격과 명분을 둘러싼 논쟁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면, 정부는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누가 구금되었는지, 어떤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지, 공권력 행사는 법적 기준을 지켰는지 밝히는 것이 순서다. 침묵은 의혹을 키울 뿐이다.

외교적 성과가 나온다 해도, 내부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으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제재가 완화되고 경제가 숨을 돌리더라도, 시민이 체감하지 못하면 변화는 반쪽에 그친다. 국가는 힘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동의로 유지된다. 동의는 대화에서 시작된다.

불을 끄면 당장은 어둠이 짙어진다. 그러나 어둠이 길어질수록 사람은 빛을 더 또렷이 기억한다. 차단은 시간을 벌 수는 있어도 문제를 지우지는 못한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통제가 아니라 더 많은 설명이다. 더 단단한 철문이 아니라, 열어 둔 창문이다.

고전에서 주(周) 여왕(厲王)을 향해 소공(召公)이 올린 간언이 있다. “방민지구 심어방천(防民之口 甚於防川)”, 백성의 입을 막는 일은 강물을 막는 것보다 더 위태롭다는 경고다. 강은 둑으로 눌러도 언젠가 길을 찾아 흐른다. 억지로 틀어막을수록 물살은 더 거세진다. 민심도 다르지 않다. 잠시 눌러 둘 수는 있어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국가는 힘으로 세운 벽이 아니라, 동의로 지탱되는 질서다. 지금 테헤란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차단 명령이 아니라, 시민의 목소리를 정면으로 듣겠다는 결단이다. 스위치를 내리는 손이 아니라, 귀를 여는 자세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이 긴 밤도 끝을 향해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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