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월 16일, 제82주기를 맞아
![[기억의 시간] 이름 대신 번호로 남은 한 시인의 질문 [기억의 시간] 이름 대신 번호로 남은 한 시인의 질문](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6/01/image-37.png)
그는 시인이기 전에 죄수였다. 아니, 죄수이기를 거부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감옥은 그를 침묵시키기 위해 존재했지만,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새로 얻었다. 일제가 붙여준 숫자 하나를 그는 스스로의 이름으로 삼았다. 인간을 관리하기 위해 매겨진 번호를, 역사를 증언하는 이름으로 뒤집은 것이다.
광야는 황량했지만 그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대부분이 절망을 노래할 때, 그는 도래하지 않은 시간을 먼저 불러냈다. 그가 말한 하늘은 위로가 아니었고, 별은 낭만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도피가 아닌 기다림의 자세였고, 체념이 아닌 윤리의 방향이었다.
그의 시에는 울음이 없다. 대신 이를 악문 문장이 있다. 감정의 과잉 대신 태도의 단정함이 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그는 문학을 정서의 피난처로 여기지 않았다. 시는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과 분리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의 시어는 늘 직립해 있다. 비스듬히 기대지 않는다.
1930~40년대의 식민지 조선에서 그는 유난히 미래를 말한 사람이었다. 현재가 아니라 이후를 말한 시인. 현실을 고발하기보다 현실을 통과한 다음의 세계를 먼저 상상한 인물이었다. 광야 끝에서 백마를 부른 것도, 청포도가 익어갈 시간을 셈한 것도 모두 같은 이유에서였다. 지금은 견디는 시간이고, 언젠가는 건너야 할 시간이 온다는 확신. 그 확신이 그의 시를 만들었다.
2026년의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우리는 더 이상 식민지가 아니고, 더 이상 총칼 앞에 서 있지 않다. 그러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권력은 언어를 어떻게 관리하는가. 지식인은 어디까지 침묵할 수 있는가. 개인은 체제 앞에서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끝내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가.
오늘의 정치 역시 숫자를 좋아한다. 여론조사, 지지율, 클릭 수, 조회 수. 인간은 다시 번호로 환원된다.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말은 가벼워지고, 책임은 분산된다. 이 시대의 감옥은 철창이 아니라 무관심이고, 검열은 금지가 아니라 알고리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우리의 언어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 시인은 이렇게 살았다. 잡히는 것을 피하지 않았고, 침묵으로 생존을 도모하지 않았다. 그는 패배를 전제로 글을 쓰지 않았다. 승리를 확신해서가 아니라, 패배를 미리 받아들이는 태도가 더 큰 패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타협이 없고, 사과가 없으며, 변명이 없다.
그의 마지막은 조용했다. 총살도 아니었고, 장엄한 장례도 없었다. 감옥에서 병들어 죽었다. 해방을 불과 1년 앞둔 시점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종종 그렇게 기록된다. 가장 오래 견딘 사람이 가장 늦게 도착한다.
2026년 1월 16일, 그의 죽음으로부터 82년이 흘렀다. 시는 교과서 속 문장이 되었고, 이름은 기념관의 현판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시가 아니라 태도다. 시를 쓰는 방식이 아니라, 시대를 통과하는 방식이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이 시대의 광야는 어디인가.
우리는 무엇을 이름으로 삼고 있는가.
그리고 끝내,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 것인가.
그 질문을 남기고 간 사람.
그의 이름은 이육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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