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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엘리트 외교관, 어쩌다 이 지경까지 — 義利의 길을 저버린 위증의 밤

[사설] 엘리트 외교관, 어쩌다 이 지경까지 — 義利의 길을 저버린 위증의 밤
법원 구속영장심사 출석하는 조태용 전 국정원장 (사진제공=TV조선 방송화면 캡쳐)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은 외교관으로 시작해 한미동맹의 현장을 지킨 전문가였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국정원장까지 오른 ‘엘리트 코스’의 상징이었다. 냉철한 분석과 품격 있는 언행으로 후배 외교관들의 귀감이라 불렸던 그가, 이제는 법정의 피의자석에 앉게됐다. 구속의 사유는 단순한 절차 위반이 아니라, ‘거짓말’과 ‘책임 회피’였다. 이른바 ‘계엄의 밤’이라 불린 작년 12월 3일의 비상상황에서 그가 보인 태도와 이후 국회 증언에서의 위증은, 공직자의 최소한의 도리조차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외교관의 언어는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그들은 국가의 체면을 걸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조 전 원장은 그 언어의 무게를 잊은 듯했다. 국회에서 “지시받은 바 없다”고 단언하던 그의 발언이 뒤늦게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그동안 쌓아온 외교적 신뢰의 자산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보고의무를 저버리고, 증언에서 진실을 감췄다면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실수가 아니다.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과 국가 보고체계의 신뢰를 스스로 훼손한 중대한 위법 행위다.

유교 경전에는 ‘義利(의리)’라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 ‘의(義)와 이(利)’를 함께 다스리는 덕목이다. 그러나 그 뜻의 핵심은 단순히 ‘의리’가 아니라 “옳은 일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즉, 의로움 없는 이익은 사익이고, 진실 없는 충성은 변명일 뿐이다. 조태용이 스스로를 ‘국가를 위한 충성’이라 말하며 거짓을 합리화했다면, 그것은 결코 의리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정원 (사진제공=국정원)

‘계엄의 밤’ 당시 그는 국가정보의 최정점에 있었다. 위기와 혼돈 속에서 국가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그가, 오히려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면 그 책임은 무겁다. 국정원장이라는 자리는 정권의 호위무사가 아니라, 헌법질서의 수호자다. 그가 만약 상황을 제대로 보고하고, 정치적 판단이 아닌 헌법적 절차에 따른 대응을 했더라면 오늘의 사태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조태용은 평생을 외교 일선에서 보냈다. 워싱턴의 한복판에서, 서울의 청와대에서, 그는 늘 국가의 얼굴이었다. 그런 인물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며 ‘진실’을 지우는 쪽에 섰다는 사실은 국민에게 깊은 허탈감을 준다. 한때 국가의 품격을 상징했던 외교관이, 권력의 불투명한 어둠 속에서 스스로 그 품격을 무너뜨린 것이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변명이 아니라 진실의 고백이다. 법이 묻는 것은 ‘충성의 모양’이 아니라 ‘진실의 내용’이다. 국가를 위해 봉사했다는 명분은, 거짓 앞에서 설 자리가 없다. ‘의리’를 말하기 전에, ‘의(義)’가 빠진 의리는 허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전경 (사진제공=국회)

엘리트 외교관으로 출발해 정보기관의 수장에 오른 한 인물의 추락은 단지 개인의 몰락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과 양심 사이에서 옳은 일을 선택하지 못한 공직사회의 거울이기도 하다. 조태용의 구속은 그 거울이 보여주는 차가운 현실이다. 이제 남은 것은 진실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국가에 남길 수 있는 최소한의 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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