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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시간] ‘필립 제이슨’ 너무 이른 시민의 이름으로

[기억의 시간] ‘필립 제이슨’ 너무 이른 시민의 이름으로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 서재필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민의 이름이다.

역사는 종종 승자의 이름으로 기록되지만, 기억은 패자의 질문 위에서 자란다. 서재필(徐載弼). 이 이름은 독립운동사의 전면에 반복해 등장하지만, 그가 남긴 질문의 깊이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성실히 답해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운 인물이라기보다, 나라란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묻고자 했던 사람에 가까웠다.

서재필은 조선의 마지막을 살았고, 아직 오지 않은 대한민국을 먼저 살았다. 그것이 그를 고독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위대하게 했다.

1884년 갑신정변의 실패는 이제 막 관료 생활을 시작한 청년을 단숨에 역적으로 만들었다. 왕조의 질서 속에서 개혁은 반역이었고, 질문은 범죄였다. 서재필은 도망쳤고, 조국은 그를 버렸다. 가족은 희생되었고, 이름은 지워졌다. 그가 선택한 망명은 생존이었지만, 동시에 조선이라는 체제와의 단호한 결별이었다.

미국에서 그는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이 되었다. 왕의 신민이 아니라 공화국의 시민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낮에는 노동자로, 밤에는 학생으로 살아가며 그는 근대를 몸으로 배웠다. 법 앞의 평등, 시민의 권리, 언론의 자유. 그것은 책 속의 개념이 아니라 일상의 질서였다. 한국인 최초의 미국 시민이자 서양의학 박사가 된 그의 이력은, 단순한 개인적 성공이 아니라 조선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삶의 형식을 증명하는 사례였다.

1896년, 그는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조선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서재필은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왕에게 바치는 교지가 아니라, 백성을 향한 신문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백성을 ‘백성’이라 부르지 않고 ‘국민’으로 호명한 최초의 언론이었다. 한글로 쓰인 논설은 묻는다. 왜 우리는 늘 남의 나라 눈치를 봐야 하는가. 왜 법은 위에 있고, 사람은 아래에 있는가. 왜 나라는 있으되 국민은 없는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는 그 질문의 연장이었다. 서재필이 말한 독립은 국호의 문제가 아니었다. 주권의 소재가 왕에서 시민으로 이동하는 사건이었다. 독립문은 그 상징이었다. 사대의 문을 허물고 자주의 문을 세운다는 발상은, 당시로서는 위험할 만큼 급진적이었다.

예상대로 반발은 거셌다. 보수 유림과 권력은 서재필을 불온한 사상가로 규정했다. 왕권을 위협한다는 이유였다. 그는 다시 떠나야 했다. 조선은 그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 두 번째 추방은 개인의 좌절이 아니라, 조선이 근대로 건너갈 수 있었던 하나의 다리를 스스로 끊어낸 순간이었다.

이후 서재필은 독립운동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싸웠다. 미주 한인 사회를 조직하고, 미국 정치권과 언론을 상대로 일본 제국주의의 실상을 알렸다. 그는 총을 들지 않았고, 폭탄을 던지지 않았다. 대신 문서를 쓰고, 연설을 하고, 설득했다. 국제사회라는 무대에서 독립을 말한 그는, 외교 이전에 시민을 말한 독립운동가였다.

광복 후 귀국했지만, 그가 꿈꾸던 나라는 그곳에 없었다. 분단과 이념 대립, 전쟁의 포성이 모든 질문을 압도하던 시기였다. 시민의 탄생은 다시 유예되었고, 국가는 먼저 세워졌으나 민주주의는 미완으로 남았다.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고, 끝내 권력의 중심에 서지 않았다.

1951년 1월 5일,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해에 그는 조용히 생을 마쳤다. 그리고 2026년 1월 5일 오늘은, 그가 영면한 지 75주기가 되는 날이다.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지만, 그가 꿈꾸던 나라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 75년은 서재필이 틀렸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의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거다.

서재필의 비극은 실패에 있지 않다. 그의 비극은 너무 앞서 있었다는 데 있다. 왕조에서 시민으로, 신분에서 권리로, 충성에서 책임으로 넘어가는 질문은 당대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민주주의의 문법은, 모두 그의 질문 위에서 자랐다.

기억의 시간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을 현재로 불러오는 일이다. 서재필은 묻는다. 우리는 정말 시민인가. 권리는 요구하면서 책임은 감당하고 있는가. 나라는 독립했지만, 사고는 여전히 의존적이지 않은가.

그는 성공한 혁명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실패한 선각자의 질문은 살아남았다. 역사가 그를 잠시 잊었을지라도, 민주주의는 그를 기억하고 있다.
너무 이른 시민의 이름으로 던져진 질문 앞에, 이제 답해야 할 시간은 우리에게 와 있다.

  • Brody3463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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