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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시간】 고개 숙이지 않았던 이름, 단재 신채호

【기억의 시간】 고개 숙이지 않았던 이름, 단재 신채호

오늘, 2026년 2월 21일은 신채호가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지 90년이 되는 날이다. 1936년 2월 21일 오후 4시 20분. 공식 기록은 건조하다. 뇌일혈, 사흘의 투병, 그리고 사망. 그러나 그 몇 줄로 한 인간의 사유와 결기, 시대를 향한 분투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단재는 흔히 ‘민족사학자’로 불린다. 하지만 그 명칭은 그를 과거 속 안전한 인물로만 남겨두기 쉽다. 그의 글은 학술적 정리 이전에 시대에 대한 저항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역사를 쓴다는 일은 단순한 학문 활동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였다.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다.”

이 명제는 한 시대의 격문이자 철학이다. ‘아’는 단순히 민족을 뜻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주체로 세우려는 의지이며, 타인의 기준에 종속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비아’는 외세일 수도 있지만, 자기 판단을 유보한 채 안일함에 머무는 태도일 수도 있다. 그가 남긴 이 문장은 독립운동기의 구호를 넘어 오늘의 사회에도 유효한 물음으로 남는다.

독사신론과 조선상고사는 대담했다. 고구려 중심의 서술은 이후 많은 논쟁을 낳았다. 모든 해석이 오늘의 학문적 기준을 충족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평가해야 할 지점은 따로 있다. 식민사관이 조선을 ‘정체된 역사’로 규정하던 시절, 그는 역사의 서술권을 되찾으려 했다. 왜곡된 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 그것이 단재 사학의 출발점이었다.

3·1운동 이후 그의 사유는 더욱 급진화된다. 국권 회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국가 또한 절대가 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권위는 언제든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자유 없는 질서는 정의가 아니라는 인식. 그가 아나키즘에 기울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철저한 자율의 사상이 놓여 있다. 독립은 깃발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라는 통찰이었다.

그는 일본 연호 사용을 거부했고, 조건부 석방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수할 때조차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는 일화는 사실 여부를 떠나 상징이 되었다. 그것은 한 개인의 고집이 아니라 시대가 갈망한 자존의 형상이었다.

90년이 흐른 오늘, 대한민국은 독립된 국가다. 투표권이 있고, 표현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제도가 곧 주체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자유는 법률 조항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불편을 감수하며, 다수의 합의 속에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습관이 사라질 때, 제도는 형식으로 남는다.

단재를 기리는 일은 그를 신화로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오늘의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불편한 질문을 다시 마주하는 데 있다.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의 기준으로 사고하고 있는가. 번영과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판단을 유보하고 있지는 않은가. 편의와 타협 속에서 ‘아’를 스스로 낮추고 있지는 않은가.

1936년 2월 21일, 여순 감옥의 차가운 공간에서 한 생은 멈췄다. 그러나 그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태도에 의해 매번 새로 쓰인다.

순국 90주기.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이름을 떠올리는 오늘은, 결국 우리 자신이 어떤 자세로 서 있는지를 돌아보는 날이어야 한다.

top_tier_1@naver.com

  • Linda3444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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