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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스승을 외면하고 팬에게만 머리 숙인 리더

[심층취재] 스승을 외면하고 팬에게만 머리 숙인 리더
프로축구 K리그1 울산HD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상하이 선화(중국) 원정에서 무승부를 기록했다. 25.10.01 (사진제공=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지난 9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 울산 HD의 베테랑 이청용은 경기 전후 신태용 감독에게 인사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장면은 팀 내부의 냉랭한 공기를 그대로 보여줬다. 현장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그 정도의 기본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다”는 말이 흘렀다. 한때 ‘레전드’로 불리던 선수가 보여준 무성의한 태도는, 울산이 처한 위기의 본질을 압축한 상징이었다.

올가을 울산의 혼란은 단순한 성적 부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신태용 감독의 경질을 앞두고 팀 내부에서는 ‘찬반 의견을 묻는 투표’가 비공식적으로 진행됐고, 그 중심에 이청용이 있었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여러 관계자들은 “공식 절차는 아니었지만, 사실상 이청용의 의견이 팀의 방향을 결정했다”고 전한다. 감독의 전술을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도자의 거취까지 좌우한 순간, 팀 질서는 이미 흔들렸다.

이청용이 18일 광주를 상대로 골을 넣은 뒤 빈손으로 골프 스윙을 하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결정적인 장면은 ‘골프 스윙 세리머니’였다. 한때 자신을 대표팀의 핵심으로 이끌었던 스승 신태용 감독을 향해, 그는 패배 직후 골프채를 휘두르는 동작을 흉내 냈다. 팬들은 “팀이 무너지고 있는데 리더가 스승을 조롱한다”며 분노했고, SNS에는 “스승을 향한 모욕”이라는 비판이 쇄도했다. 그 순간, 이청용의 이미지는 단숨에 ‘레전드’에서 팀 내부 문제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최근 울산은 하나은행 K리그1 2025 36라운드에서 수원 FC를 1-0으로 꺾으며 잔류 가능성을 높였지만, 경기 후 이청용이 팬들에게만 사과한 장면은 논란을 부채질했다. 그는 “팬들이 큰 힘이 됐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돼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팬과 전문가들은 이번 사과가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계산된 대응’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그의 사과에는 진정으로 사과해야 할 신태용 감독과 구단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문제의 근원은 구단 프런트의 방관과 특정 인사의 비호에도 있다. 이청용과 가까운 몇몇 관계자는 그의 행동을 사실상 보호하며 감독과의 갈등을 제지하지 않았다. 울산 내부에서는 ‘선수 중심의 팀’이라는 불안한 구조가 형성됐고, 지도자의 권위는 점점 흔들렸다. 한 관계자는 “감독이 바뀌어도 팀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특정 선수가 프런트의 보호 아래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청용은 팀을 자신의 무대로 인식했고, 구단 조직은 점차 그의 영향력 아래 굴절됐다.

울산HD 이청용 선수 (사진제공=울산 HD FC)

결국 이번 시즌 울산의 혼란은 단순한 경기력 문제를 넘어, 리더십과 조직문화의 붕괴에서 비롯됐다. 팬 사과는 표면적인 제스처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반성과 책임 인정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정한 ‘레전드’라면 팬뿐 아니라 신태용 감독과 구단에게 먼저 머리를 숙이고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울산 HD의 조직 회복과 신뢰 회복으로 이어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울산이 다시 하나로 설 수 있는 길은 전술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이청용이 팀의 리더로서 자신의 권력 남용과 무성의한 태도를 인정하고, 구단과 감독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다.

top_tier_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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