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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인춘풍 지기추상, 남보다 자신에 엄격한 정치

[사설] 대인춘풍 지기추상, 남보다 자신에 엄격한 정치
‘대인즉관, 대기즉엄(待人宜寬, 待己宜嚴)’
남을 대함에는 마땅히 너그러워야 하고, 자신을 대함에는 마땅히 엄격해야 한다.

정치는 말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 공직의 품격은 선언이 아니라 태도에서 드러난다. 최근 정치권을 둘러싼 각종 논란과 의혹은 하나의 오래된 격언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온화하되, 자신을 다스릴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라는 이 말은 오늘의 정치 현실을 향한 가장 간결하면서도 가장 가혹한 질문이다.

정치권은 늘 공정과 정의를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전제가 있다. 그 기준이 남에게 적용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에게 적용되고 있는가라는 점이다. 상대 진영의 의혹에는 날 선 언어가 동원되면서, 정작 같은 잣대가 자기 편을 향할 때는 침묵하거나 방어 논리로 대체되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이런 선택적 엄격함은 윤리가 아니라 계산이며, 정의가 아니라 권력의 기술일 뿐이다.

대인춘풍 지기추상이라는 말은 단순한 수사나 처세술이 아니다. 이 성어의 사상적 뿌리는 명나라 말기 사상가 홍자성(洪自誠)의 『채근담(菜根譚)』에 있다. 『채근담』은 유교의 자기 수양, 불교의 절제, 도가의 자연관을 아우른 동양 윤리서로, 권력자와 지식인이 지켜야 할 마음가짐을 집약한 고전으로 평가된다. 원문은 “대인즉관, 대기즉엄(待人宜寬, 待己宜嚴)”이라 했다. 남을 대함에는 마땅히 너그러워야 하고, 자신을 대함에는 마땅히 엄격해야 한다는 뜻이다. 후대에 이 문장은 보다 선명한 이미지로 정리돼, 봄바람과 가을 서리라는 대비적 비유를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고전이 오늘의 정치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관용은 권력자의 미덕이 아니라 시민을 향한 태도이며, 엄격함은 타인을 겨누는 칼이 아니라 스스로를 겨누는 규율이라는 점이다. 『채근담』이 강조한 수양은 남을 판단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 절제의 윤리였다. 이 순서가 뒤바뀔 때, 권력은 오만으로 변질되고 제도는 신뢰를 잃는다.

공직자는 일반 시민보다 더 높은 윤리 기준을 요구받는다. 이는 지위에서 비롯된 책임의 무게다.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권한을 위임받은 순간부터 그 삶은 공적 영역에 놓인다. 의혹이 사실로 확정되기 전이라 하더라도, 그 의혹이 국민의 신뢰를 흔든다면 설명하고, 소명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공직의 기본이다. 법적 책임과 별개로 정치적 책임이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종종 ‘사법 절차가 남아 있다’는 말로 모든 판단을 유예하려 한다. 물론 법적 판단은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의 책임을 사법의 시간표에만 맡기는 순간, 공직 윤리는 최소 기준으로 추락한다. 대인춘풍 지기추상은 법의 판결을 기다리기 전에 스스로에게 더 엄격하라는 요구다. 이것이 정치가 사법과 다른 지점이다.

정당 역시 예외가 아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개인의 일탈로 선을 긋고, 수사 결과 뒤로 숨는 태도는 책임 정당의 모습이 아니다. 정당은 단순한 선거 기계가 아니라 공적 가치의 관리 주체다. 당 소속 인사의 윤리 문제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할 때만 정치 불신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대인춘풍 지기추상은 결국 권력을 가진 자에게 더 가혹한 말이다. 타인에게는 이해와 절제를 보이되, 자기 자신에게는 변명의 여지를 주지 말라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이 원칙이 무너질 때, 정치인은 도덕을 말할 자격을 잃고, 제도는 신뢰를 상실한다.

국민은 완벽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남을 비판할 때와 같은 엄격함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정치를 원한다. 봄바람은 타인을 살리는 덕목이지만, 가을 서리는 자신을 단련하는 각오다. 공직자가 이 순서를 거꾸로 적용하는 순간, 윤리는 구호로 남고 책임은 사라진다.

지금 정치권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나 윤리 선언이 아니다. 인사 검증의 기준을 높이고, 의혹 앞에서 거취를 판단하는 정치적 관행을 되살리며, 정당 스스로가 방패가 아니라 책임의 주체로 서는 일이다. 고전은 행동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다만 기준을 제시할 뿐이다.

대인춘풍 지기추상.
이 오래된 문장이 다시 유효해지지 않는다면, 정치의 말은 더욱 가벼워질 것이고, 공직의 자리는 국민의 신뢰로부터 더 멀어질 것이다. 정치가 스스로에게 가을 서리를 들이댈 때에만, 봄바람 같은 관용도 비로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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