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恃名妄行, 명성 뒤에 숨은 침묵의 선택 [심층취재] 恃名妄行, 명성 뒤에 숨은 침묵의 선택](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5/10/image-90.png)
恃名妄行(시명망행).
이름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한다는 뜻으로, 《한서(漢書)·형법지(刑法志)》 계열에서 권세와 명성에 기대 책임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경계할 때 쓰인 말이다. 개인의 자유를 넘어 공적 책임을 저버릴 때, 고대는 이를 가장 위험한 오만으로 규정했다. 오늘 한국 축구가 마주한 한 장면은 이 오래된 경고를 다시 소환한다.
한국 축구가 한때 대표팀과 유럽 무대를 오가며 베테랑들의 이름만으로도 신뢰를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시절, 팬들은 그 선수들에게 기술과 헌신뿐 아니라 태도의 품격까지 함께 기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이름 가운데 하나는 더 이상 실력이 아닌 논란과 침묵, 책임 회피로 먼저 호명되고 있다. 이청용이라는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더 이상 ‘베테랑’이나 ‘대표팀의 한 축’이 아니다.
최근 그가 보여준 행보는 한국 프로축구가 지켜온 최소한의 질서와 윤리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감독 교체 국면과 맞물려 해석을 부른 세리머니, 그 이후 이어진 침묵, 그리고 어떤 설명도 사과도 없는 태도는 우연이나 오해로 치부하기엔 반복적이고 계산적이다. 스승과 감독을 향한 최소한의 존중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에서 팬들이 느낀 배신감은 결코 과민 반응이 아니다.

프로 선수는 고용 관계에 놓인 개인이기 이전에, 팀과 리그의 공공 자산이다. 특히 오랜 시간 대표팀과 해외 무대를 경험한 베테랑이라면 그 책임의 무게는 더 무겁다. 그러나 이청용의 최근 행보에서는 구단을 공동체가 아닌 자신의 무대로, 팀의 질서를 개인 감정의 배경으로 소비하는 인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영역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논란이 커졌음에도 그는 직접 입을 열지 않았다. 오해를 풀 기회는 외면했고, 책임을 인정할 가능성은 끝내 차단했다. 설명의 부재는 의혹을 키웠고, 침묵은 불신을 확산시켰다. 공인에게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선택이며, 때로는 가장 무거운 메시지가 된다.
대신 그는 언론의 해석에 몸을 숨기고, 팬들의 질문에는 침묵으로 답했으며, 비판 여론에는 선수협이라는 방패 뒤에 서서 법적 대응 가능성을 흘렸다. 이는 정당한 권리 행사라기보다, 명성과 조직 뒤에 숨어 책임을 분산시키는 선택에 가깝다. 고사에서 경계한 ‘시명망행’의 전형적 장면이다.

팬들은 완벽한 인간을 요구하지 않았다. 단 한 마디의 설명, 단 한 번의 사과를 원했을 뿐이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피치에서의 증명이 아니라 지면 위의 언론 플레이였고, 리더십이 아니라 영향력의 남용이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명성은 보호되지 않았고, 오히려 스스로 훼손됐다.
프로는 결과로 말하는 세계다. 더더욱 베테랑이라면 말이 아닌 태도로, 주장 완장이 아니라 행동으로 후배들에게 기준을 보여야 한다. 그 책임을 방기한 채 “오해였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 선수에게, K리그가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K리그는 은퇴를 앞둔 스타의 체면을 보존해주는 무대가 아니다. 실력으로 경쟁하고, 태도로 존중받는 리그다.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구단을 자신의 소유처럼 여기며,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지 않고, 팬의 질문에 법적 경고로 응답하는 선수에게 설 자리는 없다. 이름이 크다고 해서 원칙이 유예될 수는 없다. 한국 축구는 지금 세대교체의 문턱에 서 있다. 이청용의 현재는 한 선수의 거취 문제가 아니라, 이 리그가 어떤 가치를 끝까지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시험대다. 그리고 그 시험에서, 지금의 이청용은 합격점을 받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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