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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법불아귀(法不阿貴), 쿠팡 사태가 묻는 국가의 품격

[사설] 법불아귀(法不阿貴), 쿠팡 사태가 묻는 국가의 품격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 (사진제공=쿠팡)

국회가 30일 연석으로 개최한 ‘쿠팡 사태 청문회’는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의 제도적 자존과 민주적 책무를 가늠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청문회장에서 확인된 것은 책임의 실종과 예의의 부재였다.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문제 등 국민의 권리와 직결된 사안의 최종 책임자인 쿠팡 창업주 봄 킴(Bom Kim·김범석) 의장은 또다시 출석하지 않았다. 반복된 불출석은 단순한 일정 문제나 절차상의 하자가 아니라, 국회와 국민을 대하는 인식 그 자체를 드러내는 상징적 장면이다.

국회 증언은 처벌이 아니라 민주적 책임의 한 형태다. 국내 대기업 총수들 역시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가 요구하면 출석해 질의에 응하고, 사과와 재발 방지책을 약속해 왔다. 외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본사를 해외에 두고 있다는 이유로 그 의무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만약 동일한 사안이 미국 의회에서 제기됐다면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있었겠는가. 미국 의회는 개인정보 보호, 시장 질서, 노동 기준 문제에 있어 훨씬 더 강력한 증언 요구와 자료 제출을 관철해 왔다. 한국 국회만을 ‘소나기 피하기’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이는 명백한 안하무인이자 방약무인의 태도다.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통역 방식 논란, 자료 제출 거부, 형식적 보상안 역시 책임 있는 경영과는 거리가 멀다. 국민의 분노를 달래기에는 턱없이 낮은 보상 수준과 판촉에 가까운 대책은 또 다른 공분만을 키웠다. 국회를 우회하고, 국경 뒤에 숨는 방식으로는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경영진에게 시장의 존중을 기대하는 것은 공허하다.

정치권의 대응 또한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이 연석 청문회에는 불참하면서 국정조사를 주장한 태도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소극적으로 비친다. 외국 기업 문제 앞에서만 유독 신중해지는 모습은 ‘사대굴종’이라는 비판을 자초한다. 외국 기업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국내 기업에는 엄격하고 외국 기업에는 느슨한 이중 잣대로 이어진다면, 이는 개방이 아니라 차별이며 공정의 훼손이다. 법과 제도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 사안을 분명한 기준으로 정리해야 한다. 추가 출석 요구와 고발, 국정조사 등 법이 허용하는 모든 수단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외교 관계에서 상호주의가 기본 원칙이듯, 시장 질서에서도 상호주의는 예외일 수 없다. 한국 시장에서 성장과 혜택을 누려온 기업이라면, 한국의 법과 제도, 그리고 국민 앞에 성실히 응답해야 한다. 봄 킴 의장과 쿠팡 경영진에게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관용은 강한 제도 위에서만 미덕이 된다. 법의 잣대가 자본의 크기나 국적에 따라 달라지는 순간, 관용은 특혜로 전락한다. 쿠팡 사태는 단지 한 기업의 일탈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로 남을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법불아귀(法不阿貴) ‘법은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는 그 원칙 앞에 예외는 없다. 이것이 지켜질 때 비로소 시장의 공정도, 국가의 품격도 바로 설 수 있다.

top_tier_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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