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4월 18일 잠실구장. 롯데 자이언츠의 2회초 공격이 이어지던 순간이었다. 2루에 서 있던 포수 임수혁이 갑자기 무너졌다. 별다른 전조도 없었다.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려던 찰나였다. 그는 그대로 쓰러졌고, TV 중계 화면에는 경련을 일으키는 그의 다리가 잡혔다. 중계석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의 침묵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더 당황스러웠던 건 그다음이었다. 심정지 선수에 대한 대비가 그라운드에는 사실상 없었다. 즉각적인 심폐소생술이 이뤄지지 못했고, 상시 대기하던 의료진도 없었다. 들것과 산소마스크가 전부였다. 몇 분의 공백이 생겼고, 그 사이 골든타임은 조용히 흘러갔다. 호흡과 맥박은 가까스로 돌아왔지만, 의식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긴 병상 생활이 이어졌고, 그는 16년전 오늘인 2010년 2월7일, 많은이들의 애도속에 하늘의 별이 되었다.
임수혁은 당시 롯데가 기대하던 포수였다. 야구 명문 서울고와 고려대를 거쳐 프로에 들어왔다. 공격력이 좋은 포수로 이름을 알렸다. 투고타저가 심하던 시절에도 두 자릿수 홈런을 쳤다. 포수라는 자리를 생각하면 적지 않은 숫자였다. 중심 타선에 놓아도 어색하지 않은 타자였다. 큰 경기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타자였고, 팬들 기억에 남은 장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시간은 그날 2루에서 멈췄다.
그 일은 한 선수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았다. 경기장 안전을 돌아보게 한 계기가 됐다. 이후 프로야구를 비롯한 종목들에서 의료진을 상주시켰고, 구급차를 대기시키고, 응급 대응 절차도 손봤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장면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 기준이 생기기까지 임수혁의 시간이 멈췄다는 사실은 오랜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금의 경기장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의료진이 상주하고, 구급차가 대기하고, 선수 건강 관리도 체계화됐다. 그래도 안전은 늘 점검 대상이다. 한 번 기준을 만든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허점이 생기고, 또 보완해야 한다. 경기가 이어지는 한, 이런 점검은 늘 뒤따를 수밖에 없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라고 한다. 숫자가 남고, 순위가 남는다. 하지만 어떤 선수는 기록보다 장면으로 기억된다. 임수혁이 그렇다. 많은 팬들에게 그의 이름은 어느 타율이나 홈런 숫자보다, 잠실구장 2루 베이스 위의 그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날의 2루는 단순한 경기 상황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체육계가 안전을 다시 생각하게 된 출발점 같은 기억의 시간이다. 그 장면을 잊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그가 끝내 완주하지 못한 주루를 우리가 대신 이어가는 방식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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