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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왕의 자리를 ‘기념사진용 의자’로 만든 참담한 인식

[사설] 왕의 자리를 ‘기념사진용 의자’로 만든 참담한 인식
2023년 9월 경복궁 휴궁일에 경회루를 방문한 김건희(왼쪽) 여사와 이배용(오른쪽) 전 국가교육위원장의 모습. 김 여사는 당시 경복궁에 2시간 가량 머물며 경복궁의 중심 건물이자 국보인 근정전에도 들어가 임금이 앉는 의자인 어좌(용상)에 앉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제공=주진우 라이브)

국가의 상징은 단지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건축물이 아니다. 그 안에는 역사와 정신, 그리고 국민의 자존심이 깃들어 있다. 경복궁 근정전은 그 상징의 정점에 있다. 조선 왕조의 법궁이자, 왕이 즉위하고 신하들이 조회를 올리던 국가의 중심이었다. 그런 공간에 대통령 부인이 개인적 목적이나 행사 준비 차원에서 들어가 왕의 자리인 어좌(御座)에 앉았다면, 이는 단순한 의전 실수로 치부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유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는 지난해 9월 12일 경복궁 근정전 내부에 들어가 약 2시간 동안 머물며 어좌에 앉았다. 이 자리는 일반인뿐 아니라 어떤 공직자에게도 함부로 허락되지 않는 곳이다. 더욱이 해당 날은 경복궁의 휴궁일이었다.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조차 “당초 근정전 내부 관람은 계획에 없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의 요청으로 일정이 잡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방문은 사실상 ‘사적 방문’에 가까웠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출입 절차 위반이 아니다. 권력자가 국가의 상징적 공간을 ‘자기 연출의 무대’로 착각했다는 인식의 문제다. 어좌는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 역대 어떤 대통령도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 자리는 정치적 권력이나 명예를 과시하는 상징물이 아니라, 왕조의 통치 질서와 국가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자리다. 이를 단지 ‘재현품’이라며 가볍게 넘기는 것은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경시이며, 국민 정서에 대한 모욕이다.

눈 내린 종묘 전경(사진제공=국가유산청)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이 사안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불과 얼마 전 김 여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를 방문해 평소 일반인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신실(神室) 내부를 둘러봤다. 조선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가 모셔진 성역에서, 대통령 부인이 외국인 동반자와 함께 ‘문화 탐방’을 한 것이다. 그때도 비판 여론이 거셌지만, 반성과 경계심은 없었다. 이번 근정전 논란은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이쯤 되면 ‘사적 유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공적 공간은 개인의 기념 촬영 장소가 아니며, 국가유산은 권력자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전시물이 아니다. 대통령 부인은 법적 직책이 아니더라도 공적 영향력을 지닌 존재다. 그렇기에 더 신중해야 하고, 더 엄격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논란에서 드러난 것은 권력의 중심부가 문화재의 가치와 상징성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가 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국가유산청의 대응 또한 안이했다. “어좌는 재현품으로 파악된다”는 해명은 변명이 될 수 없다. 재현이든 실물이든, 그 자리가 지닌 의미는 동일하다. 국민의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무게를 느낄 것이다. 문화재를 관리하고 보존해야 할 기관이 정작 권력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절차를 굽혔다면, 그것이야말로 국가유산 행정의 수치다.

이 사안을 가볍게 넘겨선 안 된다. 대통령실은 명확히 해명해야 한다. 왜 계획에도 없던 근정전 내부 관람이 이루어졌는지, 누가 어좌에 앉기를 허락했는지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또한 향후 문화재 접근 및 촬영에 대한 내부 지침을 정비해, 공적 인물이든 사인이든 동일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2024년 3월 17일, 도쿄 민예관에 방문한 김건희 여사 (사진제공=대통령실)

왕의 자리는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겸허함과 책임의 자리다. 그 상징을 개인의 호기심으로 더럽힌다면, 그것은 단지 역사에 대한 무례가 아니라 국민에 대한 무례이기도 하다. 공적 품격은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절제의 깊이에서 나온다. 대통령 부인이라면 누구보다 그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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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lizabeth1257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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