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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 사회를 뒤덮은 ‘관음의 폭력’

[사설] 한국 사회를 뒤덮은 ‘관음의 폭력’
왼쪽부터 순서대로 조세호, 박나래, 조진웅

연말의 대한민국이 또다시 연예계 논란으로 소란스럽다. 조진웅, 박나래, 조세호 등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들이 잇따라 논란의 중심에 섰고, 일부 사안은 당사자의 해명과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다. 그들이 제기된 의혹에서 자유로운지 여부와 별개로, 이 사건들이 보여준 더 큰 그림은 따로 있다. 문제는 ‘사건 그 자체’보다, 사건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다.

이번 사안에서 특히 드러난 것은, 연예인을 마치 공공재처럼 다루는 대중의 무차별적 관음증이 얼마나 깊고 광범위해졌는지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다. 개인의 과오가 있다면 법과 제도로 다스리면 될 일이다. 그러나 아직 사실관계조차 정리되지 않은 단계에서, 마치 “연예인은 사생활이 존재하지 않는 존재”라는 듯, 모든 과거와 주변 관계까지 전부 파헤쳐야 직성이 풀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정당한 것인가.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다. 사회적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경제 엘리트가 아니다. 단지 공적 플랫폼에서 노동을 제공하는 직업인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연예인이라는 직업만으로 그들에게 능력 이상의 강도, 법적 기준을 뛰어넘는 도덕적 완전성을 요구한다. 심지어 어린 시절의 비행, 사적 관계, 직장 내부 분쟁까지도 “대중에게 공개될 의무가 있다”는 암묵적 통념이 당연한 듯 작동한다. 이것이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

최근 몇몇 SNS 채널이나 ‘폭로 계정’들은 마치 사적인 첩보기관이라도 된 듯, 당사자를 겨냥해 사소한 일상을 확대하고 의혹을 재조립해 여론의 광장에 올린다. 일부 언론 역시 ‘조회수 경쟁’에 매달리며 사실 확인보다 자극적 제목과 단편적 해석을 앞세운다. 개인의 변론권은 무시되고, 법적 절차는 기다림의 대상이 아니라 귀찮은 절차에 불과해진다. 대중은 이 과정 전체를 실시간 드라마처럼 소비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연예인은 ‘사회적 실수’를 넘어 ‘사회적 사형’의 대상이 되기 쉽다. 방송 하차, 광고 계약 해지, 향후 활동 중단은 시시각각으로 결정된다. 마치 대중적 인기를 누려온 만큼, 그 반대 방향의 징벌 또한 신속해야 한다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대중적 비난은 법이 아니다. ‘의혹만으로도 매장’하는 구조는 법치주의의 보조선조차 지키지 못하는 위험한 방식이다.

우리 사회가 연예인을 다루는 방식에는 분명한 불균형이 존재한다. 연예인이 범법 행위를 저질렀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책임의 정도는 법률이 규정한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지금처럼 “연예인은 더 깨끗해야 한다”는 정서적 기준을 앞세워, 법적 판단 이전에 이미 사회적 처벌을 가하는 구조는 지나치다. 그것은 공정함이 아니라, 대중적 정의감이라는 이름의 집단적 폭력에 가깝다.

연예인은 우리와 같은 시민이다. 가족이 있고, 과거와 실수도 있으며, 성장 과정의 그림자 또한 존재한다.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과오를 영원히 공개·비판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도 거리가 멀다. 그들의 잘못을 밝히는 데 필요한 것은 ‘전 국민의 CCTV’가 아니라, 정확한 사실 확인과 절차에 따른 판단이다.

관음증은 사회를 병들게 한다. 실체적 진실은 멀어지고, 자극적 정보 경쟁만 남는다. 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은 바로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합리성이다. 최근의 논란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은 단 하나다.
우리는 과연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을 소비하고 있는가.

연예계를 향한 도덕적 잣대는 공정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잣대가 타인의 삶을 침범하는 관음의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대중의 관심이 권력이 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욱 절제하고 숙고해야 한다.
연예인은 죄 없는 관음의 제물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사생활을 소비하는 관객으로 머물 자격이 없다.

top_tier_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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