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침의 테헤란, 정적의 평양 — 자절어천하의 경고 [사설] 외침의 테헤란, 정적의 평양 — 자절어천하의 경고](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6/01/image-36-833x1024.png)
이란 전역을 뒤흔든 대규모 시위와 그에 따른 참혹한 인명 피해는 더 이상 한 국가의 ‘내부 문제’라는 말로 가릴 수 없는 사안이 됐다. 수천 명이 숨졌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총성보다 먼저 울려야 했던 것은 국가의 책임 있는 설명과 수습이었다. 그러나 이란 정부가 선택한 것은 대화가 아니라 무력이었고, 해명이 아니라 통신 차단이었다. 이는 질서 회복이 아니라 비극의 반복을 자초한 결정이었다.
어떤 체제든 위기는 찾아온다. 문제는 위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앞에서 국가가 시민을 어떻게 대하느냐다. 시위의 정치적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과 무관하게, 민간인의 생명 보호는 어떤 국가도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책무다. 무력 진압의 중단, 구금자 현황과 처우의 공개, 독립적 조사 수용은 체제의 패배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가 아직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는 증명에 가깝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국경을 넘어 한반도의 북쪽을 떠올리게 한다. 북한 사회 역시 장기간의 경제난과 정보 차단, 체제 비판의 봉쇄 속에 놓여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이란의 분노는 거리에서 폭발하고 북한의 고통은 침묵 속에 가라앉아 있다는 점이다. 총성과 시위가 없다고 해서 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사회일수록, 인도주의적 재앙은 더 깊고 은밀하게 진행된다.
이런 선택의 끝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중국 고대사에 있다. 《사기(史記)》가 전하는 항우(項羽)의 최후다. 항우는 진(秦)을 멸망시킨 영웅이었고, 천하의 절반을 손에 넣었던 패왕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천하를 얻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한 군사적 패배가 아니었다. 사람을 잃었고, 신뢰를 잃었으며, 결국 스스로 천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항우는 패배의 갈림길마다 선택했다. 관중(關中)에 도읍하지 않고 옛 초나라로 돌아갔고, 공을 세운 장수들을 의심했으며, 민심을 얻기보다 공포로 다스렸다. 범증을 잃고, 한신을 품지 못했으며, 유방과 달리 함께 천하를 나누는 정치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해하(垓下)에서 포위됐을 때, 그는 강동으로 돌아갈 길이 있었다. 그러나 항우는 말했다.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위해 일어섰는데, 내가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겠는가.”
그는 적에게 패배한 것이 아니라, 천하로 돌아가는 길을 스스로 끊었다. 이것이 바로 고전이 말하는 自絶於天下다.
자절어천하는 외부의 단절이 아니다. 제재나 포위의 결과도 아니다. 스스로 관계를 끊고,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는 정치적 행위다. 항우는 마지막 순간까지 싸웠지만, 그 싸움은 천하를 얻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이미 끊어낸 천하를 향한 독백에 가까웠다.
오늘의 이란과 북한이 서 있는 자리 역시 이 역사와 겹쳐 보인다. 정보 차단, 무력 우선, 외부의 우려를 ‘적대’로만 규정하는 태도는 단기적으로 체제를 지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항우가 강동을 외면한 선택과 다르지 않다. 국제사회와의 관계, 민심과의 연결, 인도주의라는 최소한의 합의를 스스로 끊는 순간, 국가는 이미 자절어천하의 길로 들어선다.
대한민국 정부가 이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분명해야 한다. 첫째, 이란 정부를 향해 인도주의 원칙에 기반한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평화적 시위에 대한 과도한 무력 사용과 민간인 희생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는 특정 국가를 겨냥한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최소한의 규범에 대한 확인이다.
둘째, 이 문제를 북한과 분리된 사안으로만 다뤄서는 곤란하다. 항우의 몰락이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시대의 교훈이었듯, 이란의 오늘은 정보와 대화의 통로가 차단된 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란에 침묵하면서 북한을 말할 수 없고, 북한을 외면하면서 이란의 비극을 애도할 수도 없다.
셋째, 이번 사태는 한국 사회 내부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항우와 유방의 차이는 무력의 크기가 아니라, 불만과 공을 어떻게 흡수했는가의 차이였다. 표현의 자유, 정보의 투명성, 정치의 책임성은 이상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조건이다. 이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던져진 경고다.
테헤란의 침묵과 평양의 정적은 같은 메시지를 품고 있다. 국가가 인도주의를 외면하는 순간, 그 국가는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천하를 끊는다. 항우의 비극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자절어천하의 길에는 명예도, 안정도 없다. 남는 것은 고립과 후회의 역사적 기록뿐이다. 이란 정부는 지금이라도 생명과 존엄을 우선하는 선택으로 돌아와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 역시 원칙과 일관성이라는 정치의 기본으로 이 비극 앞에 답해야 한다. 그것이 천하와의 관계를 끊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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