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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쌤의 책방] “비바 베르디!” 민족의 노래가 된 오페라 – 예술로 역사를 쓰다

『베르디 오페라, 이탈리아를 노래하다』
전수연 지음|휴머니스트

[봉쌤의 책방] “비바 베르디!” 민족의 노래가 된 오페라 – 예술로 역사를 쓰다
『베르디 오페라, 이탈리아를 노래하다』
전수연 지음|휴머니스트

“오페라 속에서 이탈리아가 깨어났다.”
이 문장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의 생애를 가장 간결히 요약하는 표현일 것이다. 19세기 이탈리아의 거장 베르디는 음악가이자 정치적 상징이었다. 그의 선율은 단지 사랑과 죽음의 비극을 노래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억눌린 민족의 숨결, 통일을 향한 열망의 외침이었다. 전수연의 『베르디 오페라, 이탈리아를 노래하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역사학자의 눈으로, 동시에 열렬한 베르디언의 심장으로, 한 음악가의 인생을 이탈리아 근대사의 흐름 속에 새겨넣는다.

전수연 저자는 프랑스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는 단순히 역사를 서술하지 않는다. 학자의 냉철함과 애호가의 뜨거움을 오가며, 베르디의 오페라를 하나의 ‘국가의 언어’로 읽어낸다. 책은 ‘네 막의 오페라’로 구성되어 있다. 1막은 오페라극장을 전장으로 바꿔버린 젊은 베르디의 분투, 2막은 사랑과 가족이라는 인간적 고뇌, 3막은 정치적 상징으로 부상한 예술가의 시대, 4막은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는 말년의 여정을 그린다. 마치 베르디의 인생 자체가 하나의 대작 오페라인 듯, 저자는 섬세하게 막을 나누고 장면을 배치한다.

1막에서 우리는 베르디의 ‘국가적 탄생’을 목격한다.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당시 이탈리아인들에게 단순한 오페라가 아니었다. 오스트리아의 통치를 받던 시절, 그 노래는 “우리의 조국을 되찾자”는 민중의 암호였다. 관객들은 공연 중 눈물을 흘리며 합창을 따라 불렀고, ‘베르디 만세(Viva Verdi)!’라는 구호는 곧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국왕 만세(Viva Vittorio Emanuele Re D’Italia)!’라는 정치적 상징으로 변했다. 전수연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짚으며, 오페라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민족의 정치적 언어가 되었음을 명쾌하게 드러낸다.

2막에서는 한 인간으로서의 베르디가 등장한다. 일찍 가족을 잃고, 사회적 비난 속에서 재혼한 여성 지우세피나 스트레포니와의 관계를 통해, 그의 작품 속 ‘사랑’과 ‘죄’, ‘구원’의 주제가 형성된 과정을 추적한다. 《리골레토》와 《라 트라비아타》에 담긴 비극적 인간상이 단지 극적 장치가 아니라, 베르디 자신의 상처에서 비롯된 ‘실존의 고백’이었음을 저자는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역사와 인간의 내면이 교차하는 이 대목에서, 책은 단순한 음악 평론을 넘어 한 인간의 영혼에 대한 탐구로 확장된다.

3막 ‘비바 베르디’는 저자의 필력이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가면무도회》, 《돈 카를로스》, 《아이다》로 이어지는 중기 작품에서 베르디는 거대한 정치·종교권력의 모순을 다루며, 예술가로서의 사명과 현실의 갈등을 노래한다. 전수연은 베르디가 단순한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예술로 호소한 ‘시민적 예술가’였다고 강조한다. 오페라 무대는 혁명광장의 또 다른 얼굴이었고, 베르디의 음표 하나하나는 자유를 향한 외침이었다.

마지막 4막은 노년의 베르디가 남긴 여운이다. 《오텔로》의 질투, 《팔스타프》의 유쾌한 희극성, 그리고 ‘카사 베르디’ 노인 음악가의 집을 세운 그의 인간적 유산까지, 저자는 베르디의 생애를 “비극으로 완성된 희극, 혹은 희극으로 승화된 비극”이라 정의한다. 세월이 그의 날카로운 이상을 다듬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만큼은 결코 식지 않았다.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사진제공=클룩)

이 책의 미덕은 음악과 역사를 잇는 교량 역할에 있다. 저자는 오페라의 줄거리나 악곡 분석에 머물지 않고, 그 작품이 태어난 시대의 공기와 사람들의 감정까지 복원한다. 덕분에 독자는 《아이다》의 웅장한 행진곡에서 이집트 제국의 영광뿐 아니라, 통일 이탈리아의 야망을 함께 듣게 된다. 또한 각 장 말미에 수록된 ‘오페라 읽기’ 코너는 오페라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 친절한 길잡이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전수연의 문체는 건조한 학문적 서술이 아니라, 오페라의 리듬을 닮았다.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고요하게 흐르며, 베르디의 인생과 작품을 이야기한다. 읽다 보면 저자 자신이 무대 뒤에서 막을 지휘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만큼 베르디에 대한 애정이 진하고, 동시에 분석은 냉철하다. 그는 ‘베르디 찬가’에 머물지 않고, 신화화된 베르디의 이면, 권력과의 타협, 예술가의 고독까지도 담담히 그린다.

베르디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단순한 평전이 아니라 하나의 안내서이자 해설서다. 오페라를 통해 민족과 예술, 그리고 인간의 자유를 노래했던 한 거장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오페라는 삶의 또 다른 언어”라는 저자의 말이 실감난다.

나는 베르디의 선율을 들을 때마다 이탈리아의 햇살과 혁명의 열기가 함께 느껴진다. 전수연의 『베르디 오페라, 이탈리아를 노래하다』는 그 감정의 원천을 밝히는 책이다. 역사학자의 손끝에서, 오페라는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예술이 시대를 움직이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베르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은 오래도록 내 마음의 ‘오페라극장’ 한편에 남을 것이다.

top_tier_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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