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적수국 압력’만 탓하는 80년 체제, 변화의 길은 여전히 막혀 있다 [사설] ‘적수국 압력’만 탓하는 80년 체제, 변화의 길은 여전히 막혀 있다](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5/10/IMG_3427.jpeg)
북한이 9일 밤 평양 능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조선노동당 창건 80주년 경축행사를 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주민과 외빈 앞에서 “적수국들의 정치·군사적 압력에 초강경으로 맞서겠다”고 선언하며,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사회주의 낙원”을 건설하겠다고 장담했다. 불꽃놀이와 매스게임이 어우러진 대대적 행사는 체제의 위용을 과시하려는 선전무대였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고립과 불안이 교차하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 당은 단 한 번의 노선 착오도 없었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지난 80년의 현실은 그 말과 거리가 멀다. 주민의 삶은 여전히 빈곤에 갇혀 있고, 경제는 자력갱생의 허구 속에서 침체를 거듭해왔다. 핵무력 병진노선이 낳은 대가는 제재와 외교적 고립이었다. 체제의 존속을 위해 ‘외세의 압박’을 영구적 명분으로 삼는 정치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겠는가.
이번 행사에는 중국의 리창 총리,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부의장, 베트남의 럼 서기장이 나란히 참석했다. 김정은 정권이 이른바 ‘반미 사회주의 연대’를 재가동하며 중국·러시아에 기댈 여지를 키우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 국가 역시 자국 이익을 우선시할 뿐, 북한 체제의 지속을 무조건 보장해줄 존재는 아니다. 대외 의존을 ‘자주’라 부르고, 핵무력을 ‘자위’로 포장하는 것은 이미 낡은 수사에 불과하다.
노동당 80년의 역사는 항일혁명·전쟁·세습으로 이어진 ‘권력의 역사’였다. 세대가 바뀌어도 정치적 개혁이나 개방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수호와 건설의 과업을 동시에 수행해왔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은 현실을 외면한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주민의 자유와 풍요가 배제된 ‘사회주의 낙원’은 공허한 구호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제 북한이 진정 기념해야 할 것은 ‘체제의 경직성’이 아니라 ‘변화의 용기’여야 한다. 세계가 빠르게 변하는 가운데 오직 북한만이 시간 속에 멈춰 있다. ‘적수국의 압력’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고립의 벽이 북한을 가두고 있음을 김정은 정권은 깨달아야 한다.
당 창건 80주년을 맞은 지금이야말로, ‘핵과 제재의 악순환’을 끝낼 마지막 기회다. 내부 결속에 매달리며 외부를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로는 100년의 역사를 이어갈 수 없다. 북한이 진정한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주민을 위한 국가로 거듭나려면, 먼저 폐쇄된 체제의 문을 열고 세계와 마주해야 한다. 그것이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을 이어받았다는 정권이 남겨야 할 최소한의 역사적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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