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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을미사변 130주년 – 망각은 또다른 배신 –

[사설] 을미사변 130주년  – 망각은 또다른 배신 –
1897년에 촬영된 대안문의 모습, 명성황후 장례식 운구 행렬.
1895년 시해 사건이 발생한 지 약 2년 뒤인 1897년에 장례식이 거행됐다.

1895년 10월 8일, 새벽의 경복궁은 총검의 소리에 깨졌다.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지휘한 낭인과 군인들이 조선의 왕궁을 짓밟고, 명성황후를 잔혹하게 시해했다. 그것이 바로 을미사변, 국권이 유린되고 왕비가 외세의 칼끝에 쓰러진 날이다. 올해로 그 치욕의 사건이 일어난 지 130년이 된다.

130년이라는 세월은 강산이 열세 번 바뀌고도 남을 긴 시간이다. 그러나 그날의 수치와 분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을미사변은 단지 한 왕비의 비극이 아니라, 조선이 근대의 문턱에서 무너졌던 ‘국가 주권 상실’의 서막이었다.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로 조선의 친러 세력을 제거하고, 을미개혁을 명분으로 본격적인 내정 간섭의 길을 열었다. 이후 조선은 대한제국을 거쳐 결국 국권을 빼앗겼다. 역사의 시계바늘은 단 한순간의 폭력으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1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그 치욕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을미사변의 현장은 복원되었지만, 그날의 교훈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청년 세대 중 상당수는 명성황후의 이름조차 역사책 한 구절로만 배운다. 외세의 침탈과 내부 분열이 만나 나라를 잃게 된 그 ‘구체적 과정’을 잊는다면, 역사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미국의 동양학자 윌리엄 그리피스가 촬영·수집한 명성황후 장례식 운구 행렬.
1895년 시해 사건이 발생한 지 약 2년 뒤인 1897년에 장례식이 거행됐다.
(사진출처 : 윌리엄 그리피스 컬렉션)

을미사변은 총탄이 아닌 무관심으로 다시 되살아날 수도 있다. 주권과 자존을 가벼이 여기는 풍조, 외세 의존적 사고, 내부 갈등과 분열은 그 시절의 그림자를 오늘에도 이어놓는다. “역사는 기억하지 않는 자를 벌한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올해 13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단순한 추모가 아닌 ‘국가의 정체성 재확인’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명성황후가 피로 지킨 조선의 존엄을, 우리는 자유와 민주로 되새겨야 한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 해도, 역사 왜곡이나 망각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

역사는 아픈 진실을 직시할 때 비로소 미래로 나아간다. 을미사변 130년, 굴욕의 날을 기억하는 일은 과거에 머무는 일이 아니라, 다시는 그 길을 걷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망각은 또 다른 배신이다.” 130년 전 그날 새벽의 피와 눈물을 가슴에 새기며, 우리는 오늘도 주권의 무게를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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