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퇴근길 직장인·일본인 호스트 등 확실한 콘셉트로 화제 유명 유튜버들 TV서 러브콜…”친근하고 현실감 높아 인기”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이승미 인턴기자 = 일본 오사카 뒷골목, 화로 위에서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안창살 한 점에 생맥주를 쭉 들이켜고는 “와 죽인다”, “이거지 이거”라는 탄성을 내뱉는다.
누가 봐도 ‘직장인’ 냄새가 폴폴 나는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인 이 중년 남성은 유튜브 채널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의 마츠다(한국 이름 정명호) 부장.
때로는 맛있는 한 끼 식사를, 때로는 맥주나 하이볼, 사케 등과 어울리는 안주를 맛본다. 초밥, 장어, 꼬치구이 등 일본 하면 떠오르는 음식들의 현지인 맛집 소개부터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차를 가져와 술을 못 마신다며 맥주잔을 만지작거리기만 하는 스태프에게 “마셔, 내가 대리 불러줄게. 마셔, 마셔”라고 말하는 호탕함은 회식 자리에서 취기 오른 상사를 떠오르게 하며 ‘폭풍’ 공감을 일으킨다.
7일 방송가에 따르면 TV 예능 인기가 시들해진 요즘, 유명 유튜버들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그중 마츠다 부장은 대세 중 대세다. 그는 오사카 직장인의 퇴근길 맛집과 술집들을 소개하는 콘텐츠로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거나 음식, 일본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구독자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마츠다 부장의 정체는 이름 그대로 오사카에 사는 평범한 회사원. 한일 혼혈로 현재 국적은 일본이지만, 초·중·고교를 한국에서 나왔고 백두산 부대에서 군 복무도 마쳤다. 한때는 그가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모두 유창하게 하는 데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도 속속들이 알고 있어서다.
이는 수많은 일본 맛집 콘텐츠 가운데 마츠다 부장이 인기를 끄는 요인 중 하나다. 여행객이 아닌 현지에 사는 일본인만 아는 골목에 숨어있는 맛집을 소개해주는데 한국인 입맛에는 어떤 메뉴가 입에 맞을지, 가게의 분위기나 주문 방식, 먹는 방식 등은 한국과 무엇이 다른지를 짚어준다.
무엇보다 복어 조리 자격증까지 갖춘 미식가로 맛 평가에 대한 신뢰도도 높다. 맛 표현도 호들갑스럽지 않고 간결하고 솔직해 호감을 산다. 드라마로도 제작된 유명 일본 만화 ‘고독한 미식가’의 현실판이라는 반응이다. 훤칠한 키에 늘 정장을 깔끔하게 입는 데다 종업원이나 다른 손님에게도 예의가 발라 ‘꽃중년’으로도 불린다.
최근에는 SBS 예능 ‘글로벌 퇴슐랭, 퇴근 후 한 끼'(이하 ‘퇴근 후 한 끼’)에 코미디언 정준하와 함께 오사카편에 출연하기도 했다. ‘퇴근 후 한 끼’는 세계 각국의 직장인들이 퇴근 후 찾는 맛집, 술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마츠다 부장과 함께 인기 절정을 누리고 있는 이는 개그맨 김경욱의 부캐(부캐릭터) 다나카다. 다나카는 일본 유흥업소 호스트지만, 지명을 받지 못해 온종일 대기하고 있다는 ‘짠한’ 설정이다.
K-드라마로 한국어를 배웠다며 한국어와 일본어를 교묘하게 섞은 ‘한본어’를 어눌하게 발음한다. ‘반갑습니다’를 ‘반가브스무리다’,’왜 반응이 없어’를 ‘왜 반응그가 없어’라고 말하는 식이다.
과하게 층을 낸 헤어스타일에 큼지막한 브랜드 로고가 박힌 몸에 딱 맞는 티셔츠, 금장 장식의 짝퉁인 명품 허리띠 등 이른바 ‘세기말 패션’도 웃음을 터트린다. 치명적인 척하는 눈빛과 얼굴 앞에 팔을 교차한 채 손가락을 쫙 펼쳐 보이는 손짓은 트레이드 마크다.
다나카의 인기는 누가 봐도 설정인 게 분명한데 능청스럽게 부캐의 디테일을 살려낸다는 데 있다.
다나카는 일본인이라는 설정에 맞게 안중근의 서사를 담은 뮤지컬 ‘영웅’은 공포 뮤지컬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독도는 ‘너희(한국) 땅’이라고 말한다. 또 한국 짜장면 먹는 법을 모른다며 짜장 소스 대신 탕수육 소스를 면에 부어 먹으면서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김경욱 아니냐’는 지적에는 “김경욱은 내 매니저”라고 응수한다.
사실 다나카의 본래 캐릭터인 김경욱은 SBS 공채 6기 개그맨 출신이다. 코미디 프로그램인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인기를 끌었고, 동료 개그맨들과 그룹 ‘나몰라 패밀리’를 결성해 음반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국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차차 사라지면서 설 자리가 없어졌고, 유튜브를 통해 4년 전 처음 다나카라는 부캐를 탄생시켰다.
최근 MBC ‘라디오스타’, ‘복면가왕’, KBS ‘더 시즌즈’에 출연하는 등 방송사에서 러브콜을 받기까지 김경욱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다나카라는 부캐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라디오 스타’에 나와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하면서 내가 행복하니까 언젠가는 반응이 오겠지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방송가에서는 마츠다 부장, 다나카뿐만 아니라 유명 유튜버를 섭외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TV에 자주 나오는 연예인보다 신선하고 친근한 매력이 있는 데다 각자의 색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로 블랙박스에 찍힌 사고 영상을 분석해주는 유튜브 채널 ‘한문철 TV’의 한문철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JTBC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를 진행하고 있다.
또 180만명 구독자를 보유한 먹방(먹는 방송) 유튜버 입짧은햇님(본명 김미경)은 tvN ‘놀라운 토요일’의 고정 멤버로 자리 잡았고, 히밥(본명 좌희재)도 E채널 ‘토요일은 밥이 좋아’에 고정 출연 중이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마츠다 부장이나 다나카 같은 콘텐츠는 개인의 일상이나 핵심이 되는 소재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며 “이렇게 출연자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면 더 친근하고 현실감도 높게 느껴지기 때문에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이런 콘텐츠 제작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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