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책임은 없다’는 나라… 한국 사회를 뒤덮은 무책임의 구조 [사설] ‘책임은 없다’는 나라… 한국 사회를 뒤덮은 무책임의 구조](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5/11/IMG_4087.png)
특별검사 수사로 법정에 선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은 첫 공판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함께 기소된 박상현 전 7여단장, 최진규 전 포11대대장 역시 같은 태도를 보였다. 반면 일부 지휘관들은 과실을 인정하며 상급자의 지시 체계와 책임 구조를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현장 지휘관들에게 혼선을 초래했는지, 지시가 오인될 만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겠다고 했다.
하나의 사건이 법정에서 진실을 겨루는 과정은 당연하다. 혐의는 판단되기 전까지 어디까지나 ‘의혹’이며, 그 진위는 법이 엄격히 따질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법정의 공방을 넘어선다.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음에도, 책임을 지려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한국 사회의 고질적 풍토가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치·공직·군·경찰·공공기관을 막론하고, 중대 사고나 비극적 결과가 터질 때마다 ‘책임의 부재’는 반복돼 왔다. 사건 직후에는 “진상 규명”과 “엄정 조치”가 외쳐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는 아니다”, “지시 범위 안이었다”, “해석의 문제다”라는 말들만 남는다. 책임은 공중에 붕 떠버리고,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이 같은 풍조는 단순한 개인 문제를 넘어 제도와 문화의 문제다. 한국 사회의 공직 조직은 여전히 ‘직위는 권한의 근거이되 책임의 출발점은 아니다’라는 잘못된 인식에 갇혀 있다. 조직의 상층부는 “보고받지 못했다”고 하고, 중간 책임자는 “상부의 지시였다”고 한다. 현장은 “거부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피해자와 국민만이 답답한 질문을 안은 채 남겨진다.
이번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특검은 상급 지휘부의 지시가 현장 수색 방식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지만, 상급자는 인과관계를 부정한다. 지휘관 일부는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본질적 책임은 상부에 있다”고 토로한다. 법정에서 무엇이 사실로 규명될지는 재판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위계적 구조 속에서 책임이 아래로만 전가되는 모습, 그리고 누구도 스스로 책임의 지점을 찾으려 하지 않는 풍경은 너무도 낯익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무책임이 반복될수록 현장의 안전 규범과 공직자의 위험 감수 기준이 파괴된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는 구조가 작동할 때 조직은 스스로 학습하고 개선된다. 그러나 책임이 흐려지면 위험은 언제든 같은 방식으로 재현된다.
정치권에서도 다르지 않다. 정책 실패, 민생 혼란, 공공기관 비리, 국정 혼선이 발생해도 책임지는 이는 드물다. “정치적 공격”, “오해”, “전례 없는 상황”이라는 말만 넘친다. 공직 윤리와 책임 의식을 잃어버린 사회가 어떤 결과에 이르는지는 이미 여러 비극적 사건들이 증명해 왔다.
책임은 무겁고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책임 없는 권한은 폭력이고, 책임 회피가 일상화된 조직은 결국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 이번 재판은 한 사람의 개인적 책임을 따지는 절차를 넘어, 공직 사회 전체의 병든 구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사건 뒤에 숨는 기술이 아니라, 결과 앞에 서는 용기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를 더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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