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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시간] 사람의 마음을 먼저 본 장군, 그리고 지금 우리 앞의 군대

[기억의 시간] 사람의 마음을 먼저 본 장군, 그리고 지금 우리 앞의 군대
채명신 장군과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제공=ktv 유튜브 갈무리)

기억은 종종 잔인한 거울이 된다. 과거의 어떤 모습은 세월이 흘러도 흐릿해지지 않고, 어느 순간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 오늘을 비추며 묵묵히 질문을 던진다.
2013년 11월 25일, 87번째 생일을 이틀 앞둔 채 영면한 채명신 장군. 그리고 오늘, 2025년 11월 25일, 그의 12주기. 이 날은 단순한 기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군대의 현실을 돌이켜 보게 만드는, 다시 한 번의 질문의 시간이다.

채명신 장군은 전쟁을 지휘한 장군이기 전에, 사람을 먼저 본 지휘관이었다. 베트남전의 복잡한 밀림 속에서 그는 “전쟁은 지형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점령하는 것“이라 말했다. 전투의 승패보다 민간인의 생명, 장병들의 안전, 그리고 전쟁이 남길 상처를 먼저 헤아렸다. 작전 전 주민 대피를 최우선으로 조치하고, 무차별적 포격과 화력 의존을 금했다. 병사들의 숙영지를 먼저 찾아가 위험을 점검하며, 지휘관의 기준은 책이 아니라 눈앞의 사람들에게 있다고 믿었다.

그가 지휘한 주월한국군은 단 한 번도 작전을 실패한 적이 없었지만, 그의 승리는 전과나 숫자로만 측정되지 않았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지켜야 할 도덕, 민심, 그리고 군이 따라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채명신이라는 이름이 남긴 진짜 유산이었다.

그러나 12주기를 맞이한 오늘, 우리는 전혀 다른 장면을 마주한다. 국민을 보호하라고 맡긴 군의 권한을 오히려 국민을 향해 겨누려 했던 반헌법적 불법계엄 시도, 그리고 대통령의 정치적 의중에 부화뇌동해 군인의 본분을 벗어난 일부 장성들이 지금 법정에 서 있는 현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일탈이나 한 정부의 과오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군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근본적 질문을 제기하는 사건이다.

군인은 명령을 받는 존재다. 그러나 그 명령이 헌법을 넘어서는 순간, 군인의 충성은 ‘복종’이 아니라 거부로 증명되어야 한다. 헌법은 대통령의 것도, 정권의 것도, 특정 세력의 것도 아니다. 헌법은 오직 국민의 것이며, 군은 그 헌법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채명신 장군은 전쟁 중에도 이 원칙을 어기지 않았다. “전쟁터에서도 도덕을 버리면 장군이 아니다.” 그의 이 한 문장은 군인의 존재 이유와 윤리적 기준을 가장 간결하게 압축한 말이다. 하물며 평시의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계산에 따라 군을 동원하려 한 시도가 얼마나 위험하고, 얼마나 비겁한 일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평시의 군이 헌법을 침식하는 불법계엄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면, 이는 군 조직의 타락이자 국가 시스템 전체의 위험 신호다. 그러나 이 경고는 동시에 우리가 더 성숙한 미래를 만들 기회이기도 하다. 군의 정치적 중립성 강화, 장성 인사의 투명성 확보, 권력의 사병화를 막는 제도적 장치 등 대한민국은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대답을 준비해야 한다.

87세 생일을 이틀 앞두고 조용히 눈을 감으며 국가장조차 거부했던 채명신 장군. 그는 자신의 공적보다 원칙을 더 중하게 여겼고, 권력보다 국민을 앞세웠다. 그 고요한 마지막 선택에는 군인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그의 확고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오늘 우리는 그가 남긴 질문 앞에 다시 서 있다.

우리는 과연 장군이 보여준 그 품격, 그 기준을 얼마나 계승하고 있는가?
오늘의 군대는 사람을 먼저 보고 있는가?
헌법 위에 군림하려는 유혹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는가?

기억의 시간은 단지 추모를 위한 의식이 아니다. 기억은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고, 현재의 결함을 바로 세우게 하는 힘이다.

베트남의 하늘 아래서 사람의 마음을 먼저 본 장군을 되새기며, 오늘의 대한민국 군대는 다시 국민의 군대로, 헌법의 수호자로, 그리고 민주주의를 받치는 최후의 울타리로 서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채명신 장군이 남긴 시간의 유산을 우리가 현재에서 완성하는 길이며, 다가올 대한민국의 품격을 결정짓는 길이다.

top_tier_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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