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시간] 유엔 창설 80주년, 세계의 협력 정신을 되새겨야 할 때 [기억의 시간] 유엔 창설 80주년, 세계의 협력 정신을 되새겨야 할 때](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5/10/image-79-1024x683.png)
2025.06.17 (사진제공=UN)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은 인류는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유엔(UN·United Nations)을 창설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출발한 유엔은 지난 80년 동안 국제평화와 인권, 개발협력, 인도주의 구호의 최전선에서 역할을 해왔다. 51개국으로 시작한 유엔은 오늘날 193개 회원국이 함께하는 지구촌 최대의 다자 협의체로 성장했다. 유엔의 역사는 곧 인류가 ‘힘의 논리’ 대신 ‘규범과 협력의 질서’를 모색해 온 도전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세계는 다시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은 심화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동의 전쟁은 유엔 헌장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국제사회의 연대는 느슨해지고, 자국 우선주의와 극단적 민족주의가 고개를 든다. 유엔 안보리는 상임이사국의 이해관계에 발목이 잡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세계 시민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80년 전 “우리 민족과 인류의 이름으로 평화를 수호하자”던 유엔 헌장의 약속이 무색해진 현실이다.

1952.02.01 (사진제공=UN)
대한민국의 외교와 정치 또한 유엔의 창설 정신을 되돌아볼 때다. 한국은 유엔의 도움으로 전쟁의 잿더미에서 재건했고, 오늘날에는 유엔 평화유지활동과 개발협력의 주요 기여국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최근 국내 정치는 협치와 대화보다는 대결과 분열의 늪에 빠져 있다. 여야는 국익보다 당리당략을 앞세우고, 외교 현안조차 정쟁의 도구로 삼는 일이 반복된다. 국제 무대에서의 대한민국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그 위상에 걸맞은 정치 성숙도와 외교적 균형감각은 여전히 부족하다.
유엔이 추구한 ‘협력의 정치’와 ‘규범의 질서’는 지금 우리 정치가 가장 절실히 배워야 할 가치다. 자유와 인권, 평화와 법치라는 인류 보편의 원칙은 어느 한 정권이나 이념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제사회가 다자주의와 협력을 통해 평화를 지켜왔듯, 국내 정치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민주주의를 완성해야 한다. 유엔이 80년 동안 증명해온 것은, 어떤 국가나 세력도 혼자서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냉정한 진리다.
유엔 창설 80주년을 맞아 한국 정치가 새겨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평화는 힘의 과시가 아니라 신뢰와 협력의 결과이며, 진정한 국익은 상대를 이기는 데서가 아니라 함께 사는 길을 찾는 데서 비롯된다. 유엔이 지향해온 다자 협력의 정신을 되살릴 때, 대한민국의 정치도 비로소 세계와 호흡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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