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END 이니셔티브’, 이상과 현실의 간극 [사설] ‘END 이니셔티브’, 이상과 현실의 간극](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5/09/image-80-1024x628.png)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밝힌 ‘END 이니셔티브’—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는 한반도 대결 구도를 종식하겠다는 포괄적 비전이다. 그러나 이 구상은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실현 가능성을 시험받을 수밖에 없다.
먼저 현실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북한의 핵무장은 단순한 군사력이 아니라 체제 생존의 보장 장치다. 북한이 핵을 축소하거나 폐기할 가능성은 극히 낮으며, 오히려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채 경제적 양보를 얻어내려는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이 점에서 대통령의 3단계 비핵화 구상은 국제사회의 의제 설정 효과는 있겠으나, 실질적 비핵화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자유주의적 시각에서는 교류 확대와 다자주의 협력이 의미를 가진다. 경제적 상호 의존과 제도화된 대화는 갈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가정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 러시아의 변수는 다자적 협력의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한국이 제안한 협력 틀은 제도적 기반을 강화할 수 있지만,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 동력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구성주의적 접근에서 보면, 대통령이 강조한 ‘흡수통일 불추구’, ‘민주주의 회복’은 한국을 평화 지향적 국가로 자리매김하려는 정체성 전략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를 신뢰할지, 또 한국 내부의 정치적 불신 구조가 이 구상의 지속성을 보장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결국 ‘END 이니셔티브’는 이상주의적 언어와 현실주의적 장벽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는 구상이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이번 제안도 또 하나의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날 위험을 피하기 어렵다. 한반도 평화는 선언이 아니라, 냉엄한 국제정치 속에서 실천 가능한 전략과 국내적 합의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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