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캄보디아 대학생 참변’, 재외국민 보호 외교의 실효성을 다시 묻는다 [사설] ‘캄보디아 대학생 참변’, 재외국민 보호 외교의 실효성을 다시 묻는다](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5/10/IMG_3475.jpeg)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대학생이 납치·고문 끝에 숨진 참혹한 사건은 단순한 범죄 소식을 넘어, 우리 외교의 가장 기본적 책무인 ‘국민 보호’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피해 학생은 해외 취업을 가장한 유인책에 속아 현지 범죄조직에 끌려가 살해당했다. 그동안 외교부와 주캄보디아 대사관은 사건 발생 이후 수습에 나섰지만,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구조적 문제는 여전하다. ‘늦은 대응’과 ‘사후 수습’에 머무는 외교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경고가 아닌 경종이다. 이미 동남아 각지에서는 불법 온라인 도박, 가상화폐 사기, 인신매매 등이 뒤섞인 범죄조직들이 한국 청년을 노리고 있다. ‘고수익 아르바이트’, ‘해외 마케팅’ 명목의 유혹이 실상은 불법 콜센터나 보이스피싱 조직의 인력 유인책으로 드러난 사례가 속출한다. 외교부와 해외공관은 이를 ‘특정 지역의 위험’으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재외국민 안전을 국가 안보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근본적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주캄보디아 대사관의 초기 대응 역시 아쉬움을 남긴다. 피해 가족이 협박을 받던 시점부터 이미 생명이 위태로운 정황이 있었음에도, 현지 경찰과의 공조나 신속한 수사 요청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는지는 불투명하다. 대사관은 사건 발생 후 영사조력팀을 급파했다고 하나, ‘사후 브리핑’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국민이 해외에서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을 때, 공관이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떤 조치를 즉시 취할 수 있는지 매뉴얼과 실행력을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전 예방 체계의 부재다. 이미 다수의 한국인이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등지에서 유사한 수법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정부의 여행경보나 경고 시스템은 여전히 ‘자율 판단’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젊은 세대가 SNS를 통해 손쉽게 해외 구직정보를 접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외교부는 ‘여행경보’ 이상의 실질적 위험 알림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경찰청·고용노동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 부처가 협력하는 ‘해외 취업·체류 안전 통합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외국민 보호 인력의 전문화와 예산 확대가 논의되어야 한다. 현재 주재 공관의 영사 인력은 대부분 행정·민원 업무에 묶여 있으며, 긴급 구조나 범죄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외교부는 각 대사관에 ‘위기 대응 전담관’을 상시 배치하고, 현지 치안 당국과의 실시간 정보공유망을 확대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외교의 본질적 임무이며, 외교적 수사(修辭)로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번 참변은 한 젊은 생명의 비극일 뿐 아니라, 우리 외교가 어디까지 국민과 함께 서 있는지를 되묻는 사건이다. “외교는 국민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원칙을 다시 새겨야 한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외국민 보호체계를 근본부터 손질하고, 해외 범죄에 노출된 청년들을 지킬 ‘실질적 외교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외교의 존재 이유이며, 다시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교훈을 남기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국가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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