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국립대병원, ‘빅5′ 수준으로 키우기로…’지역수가’ 등 보상도 강화
‘지역의료리더 육성’ 등 지역에 정착할 의사 양성키로
비수도권 의대생 절반, 졸업 후 ‘수도권’ 병원行…”지역에 남을 수 있는 여건 마련해야”
정부가 의대 정원 증가분 2천명의 80% 이상을 비수도권 의대에 배정하면서 이번 조치가 고사 위기에 빠진 지역의료를 소생시킬 ‘마중물’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의대 증원과 함께 지역 거점 국립대병원의 역량을 ‘빅5’ 병원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지역수가’ 등을 도입해 지역의료 인프라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다만 비수도권 의대 정원을 늘리더라도 이들이 졸업 후 수도권으로 쏠릴 경우 ‘지역의료 강화’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의료계에서는 지역 의대 졸업생이 지역에서 양질의 수련을 받은 뒤 머물 수 있는 인프라를 확보해야 한다는 제언을 내놓는다.
◇ 지역 국립대병원, ‘빅5′ 수준으로…’지역의사’ 양성도 박차
20일 정부에 따르면 2025학년도 의대 입학정원 증원분 2천명 가운데 82%인 1천639명은 비수도권에, 18%인 361명은 경기인천권에 배정했다.
그간 정부는 비수도권 의대를 중심으로 증원분을 집중적으로 배치하겠다고 누누이 강조해왔고, 이날 공개된 결과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정부는 의대 증원과 배정을 시작으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의료개혁’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정부는 비수도권 의대 증원과 함께 지역 국립대병원 등 거점 의료기관이 필수의료의 중추로 자리할 수 있도록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지역에서도 양질의 중증·응급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지역 환자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겠다는 것이다.
양질의 의대 교육과 함께 우수 의료진 확보를 위해 현재 1천200여명인 9개 거점국립대 의대 교수는 2027년까지 2천200명 수준으로 1천여명 대폭 늘린다.
정부는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의료전달체계를 정비하고, 수가 등 보상도 강화한다.
필수의료가 취약한 지역에는 더 높은 수가를 적용해주는 ‘지역수가’ 도입을 추진하고, 필수의료 인력·인프라 확충과 역량 강화 지원에 사용할 ‘지역의료발전기금’ 신설도 고려하기로 했다.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상급종합병원, 2차 병원(병원·종합병원), 전문병원, 의원 등 각 급별 의료기관도 기능에 맞게 정비한다.
지역 거점병원과 병의원 사이 진료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지역의료 혁신 시범사업’도 진행한다.
대학과 지자체, 의대생 등 3자가 계약해 의대생이 장학금과 수련비용 지원, 교수 채용 할당, 거주 지원 등의 혜택을 받는 대신 일정 기간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지역의료리더 육성 제도’도 검토한다.
의사가 충분한 수입과 거주 지원을 보장받고 지역 필수의료기관과 장기근속 계약을 맺는 ‘지역필수의사 우대계약제’ 등도 검토하고 있다.
보건의료 정책 전문가들은 비수도권 의대를 중심으로 증원분을 배치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앞으로 더 섬세하고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정형선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대 증원이라는 필요조건이 이뤄지더라도 여러 충분조건이 보강돼야 진정으로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강화할 수 있는 ‘의사 재배치’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이 부분은 앞으로 정부와 여러 이해관계자, 정책 전문가의 참여하에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지역의대 증원에도 ‘수도권 쏠림’ 우려…”양질의 수련병원 확보해야”
의료계 안팎에서는 이번 증원이 실제 지역의료 강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의사들이 지역에서 수련하고 머무를 수 있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역에서 의대를 졸업한 후 수도권으로 향한는 ‘수도권 쏠림’ 현상을 완화화지 못하면 의대 정원의 대폭 증원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수가 등 처우를 개선한다고 해도 이들이 지역에 머무르게 할 수 있는 ‘확실한’ 요건은 되지 않는다”며 “의대 증원과 함께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지역의사제’ 도입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도 지역 병원에서 수련하지 않는 현실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의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지역에 있는 병원에서는 양질의 수련을 하기도, 받기도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며 “비수도권 의대에 정원을 늘려준다고 해도 지역에서 적절한 수련이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비수도권 지역에서 의대를 졸업한 의대생의 절반은 수도권으로 옮겨 수련받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2023년 지방 의대 졸업생 1만9천408명 중 46.7%(9천67명)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수련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밟았다.
특히 경북권 소재 의대 졸업생의 90%는 수도권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지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도 수도권에서 전공의 생활을 하다 보면 지역으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역에서 수련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정부 역시 지역에서 전공의가 양질의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국립대병원을 대상으로 ‘권역 임상교육훈련센터’를 확대하기로 했다.
지역 국립대병원의 역량을 끌어올려 양질의 수련환경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지역 공공의료기관 역시 수련병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남 국장은 “지역 공공의료기관의 병상을 확대하고 역량을 확충해 지역의료의 중심축으로 삼는 한편, 수련병원으로도 기능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합심해 지역의료원 병상을 확충하고 수련병원으로 활용하면, 지역의 수련병원 인프라 부족 우려 역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