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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청용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 피중취경의 언어

【칼럼】 이청용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 피중취경의 언어
지난 25일 이청용이 울산HD 구단 공식 SNS를 통해 발표한 장문의 사과문

한국 축구는 늘 말이 많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말은 책임을 피해 가장 안전한 자리로 이동한다. 지난 25일 이청용이 울산HD 구단 공식 SNS를 통해 발표한 장문의 사과문은 그 전형적인 사례다. 정제된 문장, 절제된 감정, 반복되는 사과의 표현. 그러나 글을 끝까지 읽고 난 뒤 남는 것은 ‘반성’이 아니라 ‘회피의 설계도’였다. 그는 사과했지만,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적어도 가장 중요한 대상에게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이 사과문을 관통하는 태도는 하나의 고사성어로 요약된다. 피중취경(避重就輕).

『후한서(後漢書)·장강전(張綱傳)』에 등장하는 이 말은, 무거운 책임은 피해 가고 가벼운 문제만 골라 대응하는 처신을 뜻한다. 고대 중국에서 이는 단순한 요령이 아니라, 공적 책임을 맡은 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비겁한 태도로 기록됐다. 문제의 핵심을 외면한 채, 언어로 국면을 관리하려는 행위에 대한 경고였다.

이청용의 사과문은 정확히 이 경계선 위에 서 있다. 그는 “세리머니로 인해 실망을 드렸다”고 밝혔다. 감정이 앞섰고, 더 이성적으로 행동했어야 했다는 자성도 덧붙였다. 이 대목만 놓고 보면 형식적 책임 회피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과의 범위를 조금만 넓혀 보면, 이 글이 얼마나 정교하게 책임을 축소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세리머니가 아니다. 감독과 선수의 관계, 고참 선수의 영향력, 구단 내 의사결정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작동해 온 위계의 문제다. 그럼에도 사과문 어디에도 감독은 등장하지 않는다. 갈등의 출발점도, 권위가 흔들린 이유도, 자신의 위치가 어떤 파장을 낳았는지도 언급되지 않는다. 가장 무거운 질문은 제거되고, 가장 가벼운 장면만 남았다. 사과는 있었지만, 판단은 끝내 유보됐다. 이것이 피중취경의 전형적 본질이다.

사과문의 어조는 이 지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글 전체에는 ‘미안함’은 넘치지만, ‘잘못에 대한 인식’은 흐릿하다. 감독에게 상처를 줬다는 자각보다는, 사태가 커진 것에 대한 부담이 더 강하게 읽힌다. “죄송하다”는 말은 반복되지만, 그 말이 향하는 대상은 끝내 추상적이다. 겸손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내가 무엇을 그렇게까지 잘못했는가”라는 인식이 은근히 배어 있다. 사과는 감정의 표현에 머물고, 판단의 영역에는 끝내 들어서지 않는다. 책임을 특정하지 않음으로써 비난을 분산시키는 이 방식은, 사과라기보다 상황을 관리하는 언어에 가깝다. 그래서 이 글은 사과문이면서도 동시에 자기변론의 형식을 띤다.

『후한서』에서 장강은 이런 태도를 “겉으로는 몸을 낮추되, 실상은 책임을 피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말은 많되 설명은 없고, 사과는 있으되 판단은 남겨두는 방식이다. 이청용의 글 역시 헌신, 감사, 울산에 대한 애정이라는 감정의 언어로 가득 차 있지만, 정작 갈등을 낳은 구조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한다. 감정은 드러났지만, 책임은 끝내 호출되지 않았다.

물론 반론은 가능하다. 법적 분쟁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고, 구단과의 협의 끝에 조율된 문장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수 개인에게 조직의 문제를 모두 떠넘기는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 역시 일리가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이 사과문이 가진 결정적 한계다. 사과가 구조를 언급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면, 그것은 개인의 신중함이 아니라 조직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증거다. 침묵의 이유가 무엇이든, 그 침묵이 가장 무거운 질문을 남겨두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침묵은 개인의 선택이면서 동시에 한국 축구가 반복해 온 관행이다. 스타 선수의 사과는 종종 ‘도덕적 행위’로 소비되지만, 그 이면에서는 조직 내부의 문제를 봉인하는 역할을 해 왔다. 개인의 감정과 태도로 사안을 축소하는 순간, 감독의 권위는 왜 흔들렸는지, 구단은 왜 원칙을 세우지 못했는지라는 질문은 사라진다. 피중취경은 개인에게는 가장 안전한 전략일지 모르지만, 한국 축구 전체에는 가장 위험한 관성이다.

사과문에 반복되는 “울산을 먼저 생각했다”, “모든 것을 바쳤다”는 표현 역시 이중적이다. 헌신이 진심일수록, 그 헌신이 왜 조직의 질서와 충돌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공로의 서사가 책임의 질문을 가리는 순간, 사과는 반성이 아니라 서사의 종결로 변질된다. 이는 사과가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정리하는 방식에 가깝다.

진정한 사과는 감정을 낮추는 일이 아니다. 문제를 드러내는 용기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넘어, 왜 그런 상황이 가능했는지를 말할 때 비로소 사과는 공동체를 앞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이번 사과는 그 선을 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팬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편이 끝내 개운치 않다.

피중취경은 가장 편한 선택이다. 그러나 한국 축구에 남는 것은 늘 같은 결과다. 무거운 질문은 남겨둔 채, 가벼운 답만 반복하는 구조. 이 사과문이 남긴 가장 큰 문제는, 사과 이후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다.

사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청용의 사과는 시작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사과문은, 끝내 사과가 아니다.

top_tier_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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