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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의멸친, 오늘의 정치가 다시 배워야 할 현실의 문장

[사설] 대의멸친, 오늘의 정치가 다시 배워야 할 현실의 문장
2025.07.14.(월) 김병기 당대표 직무대행 및 원내대표가 국회 본청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정치는 개인의 명예를 지키는 무대가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를 관리하는 제도다. 공직자가 저지른 논란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 조직 전체의 명분을 흔들 때, 선택지는 분명해진다. 최근 여당 지도부가 김병기 의원에게 자진 탈당을 요구하며 “애당의 길을 깊이 고민하라”고 밝힌 배경 역시 이 오래된 정치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중국 고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공 4년》에는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대의를 위해서는 친족이라도 버린다는 뜻이다. 이 성어는 냉혹한 결단을 미화하기 위한 문장이 아니다.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경계선에 가깝다. 사적인 연이나 개인의 공로가 공적 질서를 침식하는 순간, 그 공동체는 이미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다.

이번 사안에서 당 지도부가 강조한 ‘애당’은 감정적 충성이나 언변으로 증명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조직이 가장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개인이 감내해야 할 책임의 무게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정치 생명의 연장을 위해 당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선택과, 개인의 자리를 내려놓음으로써 조직의 명분을 살리는 선택 가운데 어느 쪽이 진정한 애당인지는 명확하다.

자진 탈당 요구는 정치적으로 가장 완곡하지만 동시에 가장 무거운 메시지다. 이는 강제적 제명보다 한 단계 앞선 선택지이자, 당사자에게 남겨진 마지막 책임의 공간이기도 하다. 스스로 물러남으로써 당의 자정 능력을 증명할 것인지, 아니면 조직의 결단에 의해 정리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당사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지도부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당은 사적 결사체가 아니다. 공적 권한을 위임받기 위해 존재하는 정치 조직이며, 그 존립 기반은 국민의 신뢰다. 의혹의 진위 여부를 떠나, 반복되는 논란이 당 전체의 도덕성과 공적 책임을 갉아먹는 상황이라면 지도부가 침묵하거나 시간을 끌 여지는 크지 않다. 결단이 늦어질수록 상처는 깊어지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정치에서 대의멸친은 잔인한 선택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더 잔인한 것은 원칙을 외면한 채 공동체 전체를 침몰시키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많은 정당과 권력은 ‘설마’와 ‘이번만’을 반복하다 스스로 무너졌다. 반대로 살아남은 조직들은 언제나 개인보다 원칙을 앞세웠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해명 경쟁도, 감정적 방어도 아니다. 애당을 말하려면 애당의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개인의 정치 생명보다 당의 명분과 신뢰를 우선하라는 요구는 가혹해 보이지만, 정치가 스스로에게 부과해야 할 최소한의 윤리다. 대의멸친은 고사가 아니라, 오늘의 정치가 다시 배워야 할 현실의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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