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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사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 감독ㅣ연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검찰 고위 간부들의 집단 사퇴가 이어지면서 검찰 조직은 다시 깊은 혼란에 빠졌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논란이라는 거센 파도 속에서 검찰 지도부는 조직적 책임을 회피하듯 등을 돌렸고, 이는 단순한 내부 갈등을 넘어 형사사법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문제로 평가된다. 국민적 관심이 극도로 높은 사안임에도 충분한 검토라 보기 어려운 제한적 내부 논의만으로 항소가 포기된 과정은 절차적 정당성에 심각한 의문을 남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뼈아픈 문제는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검찰 간부들의 태도다. 왜 어떤 사건에서는 침묵했고, 또 다른 사건에서는 항명성 집단 사퇴에 나서는가. 검찰의 기준은 무엇이고, 원칙은 어디에 있는가.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취소 결정과 지금의 상황을 대비하면 모순은 더욱 극명해진다. 당시 심우정 전 검찰총장이 즉시항고를 포기한 결정은 검찰 독립성과 공정성을 시험하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정치권의 격렬한 공방과 전국적 관심 속에서 사실상 전 정권 핵심 인물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뒤집혔음에도, 현재 집단 사퇴에 앞장선 검사장급 고위 간부들은 단 한 차례 공적 문제 제기도, 내부 성명도, 사직도 없었다. 그때는 침묵했고 지금은 분노한다면, 과연 그 기준은 무엇인가. 윤 전 대통령 구속취소는 옳았고,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는 옳지 않은가. 두 사건 모두 검찰 독립성과 법 집행의 원칙이 걸린 사안이었음에도 선택과 태도는 정반대였다. 국민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검찰의 판단 기준은 사건의 성격인가, 사건 속 인물인가. 법리인가, 아니면 정치적 상황인가.

이 모순적인 모습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떠올리게 한다. 같은 인물과 같은 상황에서도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버전이 만들어지는 영화적 구조가, 검찰 현실에서 재현되는 듯하다. 그때는 침묵이 ‘맞고’, 지금은 항명적 사퇴가 ‘맞다’는 식으로 행동한다면, 검찰 스스로 공권력을 영화적 서사처럼 다루는 셈이다. 그러나 현실의 법 집행 기관은 버전을 바꿔 정당성을 재구성할 수 없다. 공권력의 신뢰는 오직 일관성과 원칙에서 비롯된다.

대검찰청 전경

내년 검찰이 ‘기소청’ 체제로 전환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사태가 던지는 불안감은 더욱 크다. 기소권만 남는 조직은 훨씬 높은 투명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제한적 논의만으로 항소를 포기한 지도부의 판단과, 이에 대한 감정적 집단 사퇴라는 반응은 기소청 체제에 필요한 책임성과 안정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조직 내부에서 성찰보다 감정이 우선되는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표는 결코 책임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격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라, 검찰 스스로에게 던지는 근본적 질문이다. 왜 윤석열 전 대통령 사건에서는 침묵했고, 대장동 사건에서는 폭발했는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이유가 무엇인가. 혹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기준 없이 검찰 독립성과 명예를 운운한다면 그 명분은 설득력을 잃는다. 검찰의 독립성은 선택적 분노가 아니라, 모든 사건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흔들림 없는 원칙으로 지켜져야 한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검찰은 더 이상 두 개의 버전을 만들어선 안 된다. 특정 사건에서는 침묵하고, 다른 사건에서는 폭발하는 선택적 정의와 선택적 원칙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 검찰이 회복해야 할 것은 감정이 아니라 일관성이고, 사표가 아니라 책임이며, 정치적 파장에 흔들리지 않는 단 하나의 기준이다. 그 기준을 바로 세우는 것이 검찰 스스로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 앞에서 독립성과 명예를 지킬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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