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시간] 끝까지 국가를 믿지 않았던 사랑과 투쟁 [기억의 시간] 끝까지 국가를 믿지 않았던 사랑과 투쟁](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6/01/image-39-1024x683.png)
사진 오른쪽, 영화에서 배우 이제훈과 최희서가 당시의 장면을 재현한 모습. 실제 사진 속 분위기와 인물의 자세를 충실히 되살리며, 사랑과 저항이 교차하던 순간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불러낸다.
그는 오래 살아남았고, 오랫동안 불편한 이름으로 남았다. 제국의 감옥에서 22년 2개월을 견뎠고, 해방된 조국에서 다시 삼십 년 가까이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보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타협하지 않고, 침묵하지 않는 태도가 그의 선택이었다.
1920년대 도쿄. 조선인 청년과 일본인 여성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가 만났다. 그는 민족과 자유를 위해 일본의 심장부에서 투쟁했고, 그녀는 제국의 속박을 거부한 아나키스트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이었지만, 동시에 선언이었다. 국가가 요구하는 복종, 법이 정의를 독점한다는 믿음, 다수가 소수를 침묵시키는 질서. 모든 것을 거부하는 태도가 그들을 하나로 묶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사회는 공포와 증오에 휩싸였다. 수천 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하고, 거짓 폭동 소문이 칼처럼 휘둘렸다. 그때 두 사람은 숨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를 제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름으로 내세웠다. 천황 암살 음모 혐의로 법정에 섰을 때, 가네코 후미코는 사형을 요청하며 제국의 자비를 거부했다. 그는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다. 사랑은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함께 지키는 길이었다.
그녀는 감옥에서 생을 마쳤고, 그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살아남음이 승리는 아니었다. 22년의 장기옥살이는 제국의 폭력을 몸으로 겪은 시간이었다. 해방이 와도 그가 꿈꾼 세계는 오지 않았다. 조국은 새로운 국가를 세웠고, 이념은 또 다른 절대가 되었다. 반공과 충성의 언어 속에서, 국가를 의심한 그는 주변으로 밀려났다. 해방 이후에도 삼십 년 가까이, 그는 불편한 존재로 남았다.
오늘의 정치도 묻는다.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그는 생전에도, 죽음 이후에도 다른 질문을 남겼다.
“국가는 언제 인간 위에 서기 시작했는가.”
질서와 안전, 애국과 단결이라는 이름으로 자유가 줄어들고, 소수의 목소리가 위험으로 규정될 때, 우리는 쉽게 국가의 편에 서는 것을 성숙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해 보여 왔다. 쉽게 동원되는 애국의 언어가, 가장 먼저 인간을 배제해 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는 국가를 증오하지 않았다.
국가가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는 순간을 끝까지 거부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삶에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가네코 후미코와의 아픈 사랑이 함께 있었다.
2026년 1월 17일,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2년이 된다.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불편한 이름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가 실패하지 않았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끝까지 국가를 의심했고, 인간의 편에 서며, 사랑과 투쟁을 함께한 사람.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朴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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