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시간] ‘울지마 톤즈’로 떠난 뒤 ‘부활’로 돌아온 ‘쫄리’ [기억의 시간] ‘울지마 톤즈’로 떠난 뒤 ‘부활’로 돌아온 ‘쫄리’](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6/01/image-28-1024x766.png)
이태석 신부는 떠났지만, 그의 사랑은 제자들의 현재로 다시 살아났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꾼다. 어떤 기억은 한 사람의 이름으로 남고, 어떤 기억은 누군가의 선택이 되어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온다. ‘쫄리’ 남수단 현지에서 그를 부르던 이름, 세례명 요한의 영어식 표기 ‘존(John)’과 성씨 ‘리(Lee)’를 합친 애칭처럼, 그는 지금도 관계 속에서 불리고 있다.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는 남수단 톤즈에서 살았던 한 사제의 삶을 기록했다. 그는 돕기 위해 간 사람이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 그곳에 머문 사람이었다. 의사였지만 치료만 하지 않았고, 사제였지만 설교보다 이름을 먼저 불렀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앉아 악기를 쥐여주고, 병든 몸을 돌보며 “너는 할 수 있다”는 말을 먼저 건넸다. 〈울지마 톤즈〉가 남긴 감동은 그의 헌신 때문이 아니라, 그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됐다.
그의 삶은 흔히 ‘봉사’라는 말로 요약되지만, 그가 남긴 것은 감동이 아니라 구조였다. 동정이 아니라 교육이었고, 일회적 도움보다 다음 세대를 향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는 한 인물의 미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남긴다. 이렇게 사는 삶은 무엇을 남기는가, 그리고 그 남김은 어디로 이어지는가.
이태석 신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남수단 사람들은 울었다. 세계에서 가장 키가크고 강인한 민족으로 알려진 딩카족들도 그의 선종 앞에선 눈물을 숨기지 못했다. 자신이 가장 빛나야 할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의 밤하늘을 비춰주는 별이 된 쫄리 신부의 죽음 앞에서, 그들의 정서는 무너졌다. 그의 부재는 그가 얼마나 깊이 그들의 삶 안으로 들어와 있었는지를 증명했다.
후속 다큐멘터리 〈부활〉은 이태석 신부의 삶을 다시 재현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이 기록하는 것은 그의 선종 이후, 그가 남긴 사랑과 헌신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영화는 이태석 신부를 화면 앞으로 불러내지 않는다. 대신 그가 돌보았던 아이들의 ‘현재’를 비춘다.
남수단 주바대학교 의과대학에는 이태석 신부의 제자들 여럿이 재학하거나 졸업해 의사의 길을 걷고 있고, 다른 제자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공동체를 지탱하고 있다. 그의 삶은 끝나지 않았고, 〈부활〉은 그 사실을 사람들의 현재로 증명하는 기록이다.
두 다큐멘터리는 같은 인물을 다루지만, 시선은 다르다. 〈울지마 톤즈〉가 한 사제의 삶을 통해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부활〉은 그 가능성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현실이 되는지를 증명한다. 전자가 삶의 기록이라면, 후자는 삶이 남긴 결과다. 그래서 ‘부활’은 종교적 선언이 아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안에서 계속 살아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이태석 신부는 더 이상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사라지지 않았다. 제자들의 말 속에, 돌아가겠다는 결심 속에, 다시 시작되는 삶의 방향 속에 함께 있다.
우리는 종종 묻는다.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 이태석 신부의 삶은 이렇게 답한다. 무언가를 남기려 애쓰지 말고, 누군가를 키우라고. 기억되려 하지 말고, 기억할 사람을 만들라고. 〈울지마 톤즈〉로 떠난 그는 〈부활〉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제자들의 삶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함께 걷고 있다.
2026년 1월 14일, 그의 선종 16주기를 맞는 오늘, 우리는 한 사람의 죽음을 기리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대신 그가 남긴 시간의 방향을 되묻게 된다. 우리의 능력은 지금 어디를 비추고 있는가. 우리가 쌓아 올린 교육과 기회는 다음 세대를 어느 길로 이끌고 있는가. 한 사제는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심어 놓은 삶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람 하나가 사라진 자리에, 한 세대가 일어섰다. 이것이 쫄리 신부가 남긴 가장 조용하고도 오래 남을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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