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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가상의 무대에서 현실의 정상으로, Huntrix와 EJAE가 보여준 K-pop의 다음 장

[사설] 가상의 무대에서 현실의 정상으로, Huntrix와 EJAE가 보여준 K-pop의 다음 장
한국계 매기 강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OST ‘골든’이 미국 골든글로브 어워즈에서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제83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애니메이션 ‘K-pop Demon Hunters’와 그 주제가 ‘Golden’이 호명된 순간, 세계는 하나의 장면을 목격했다. 가상의 걸그룹 Huntrix가 만든 노래가, 그리고 그 노래의 중심에 선 한 한국계 보컬리스트의 목소리가 글로벌 문화의 권위 있는 무대에서 예술적 성취로 인정받는 장면이었다. 이는 단순한 수상 소식이 아니라 K-pop이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Huntrix는 영화 속 설정으로만 보면 허구의 존재다. 그러나 그들이 서 있는 자리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음악으로 악을 봉인하고, 무대 위의 퍼포먼스로 세계를 지키는 아이돌이라는 설정은 K-pop이 지난 10여 년간 축적해온 자기 서사의 은유에 가깝다.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감정과 정체성, 세대의 욕망을 담아온 K-pop의 역할을 극단적으로 압축한 존재가 Huntrix다. 가상의 그룹이 현실의 차트를 흔들고, 실제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 장면은 더 이상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중심에는 리더이자 메인보컬 루미가 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현실에서 구현한 인물이 바로 EJAE, 본명 김은재다. 그녀의 서사는 K-pop이 세계에 던지는 또 하나의 메시지다. 화려한 데뷔 서사와는 거리가 먼, 긴 무명과 수많은 탈락, 오디션의 반복 속에서 쌓아온 시간. EJAE는 스타로 소비되기 이전에, 창작자이자 보컬리스트로서 산업의 이면을 오래 견뎌온 인물이다.

‘Golden’은 그런 시간의 결과물이다. 영화 속에서는 루미가 자신의 정체성과 불안을 넘어설 때 울려 퍼지는 노래이고, 현실에서는 EJAE가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가능성을 증명한 곡이다. “나는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다”는 메시지는 캐릭터의 대사이자, 한 아티스트의 자전적 고백처럼 들린다. 이 노래가 골든 글로브 주제가상을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술이나 유행이 아니라, 서사와 진정성이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Huntrix가 상징하는 것은 새로운 K-pop의 형태다. 더 이상 현실 아이돌과 가상 캐릭터, 음악과 서사, 한국과 세계를 나누는 구분은 결정적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어떻게 설계하고, 감정을 어떻게 전달하며, 그 과정에서 누가 목소리를 내는가다. Huntrix는 K-pop이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플랫폼이자 서사 체계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EJAE의 수상은 그 진화의 또 다른 얼굴이다. 무대의 중심에 서지 못했던 시간이 오히려 그녀를 더 단단한 보컬과 작가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는 K-pop 산업이 가진 이중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빠른 성공과 소모의 구조 속에서도, 끝까지 남아 음악을 만든 이들이 결국 세계 무대의 문을 연다는 사실이다. 이는 수많은 연습생과 창작자들에게 보내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번 성과를 일회적 사건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가상의 그룹이 현실의 상을 받은 것이 아니라, K-pop이 구축해온 서사적·산업적 역량이 하나의 상징을 통해 인정받았다고 봐야 한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이 흐름을 어떻게 지속 가능한 구조로 만들 것인가.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보호하고, 창작자의 시간을 존중하며, 성공 이후의 삶까지 설계하는 산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다.

Huntrix와 EJAE는 K-pop의 현재를 보여주는 동시에 미래를 묻는다. 화려한 무대 뒤의 시간과, 가상의 캐릭터 뒤에 숨은 현실의 노동을 함께 보지 못한다면 이 성공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그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번 골든 글로브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가상의 무대에서 시작된 노래가 현실의 정상에 섰다. 그 노래를 부른 목소리는, K-pop이 여전히 진화 중임을 증명한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진화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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