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륜과 불법’이 얽힌 법정 드라마, 국민은 피로하다 [사설] ‘불륜과 불법’이 얽힌 법정 드라마, 국민은 피로하다](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5/10/image-38-1024x1024.png)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이 대법원에서 다시 파기환송됐다. 2심에서 인정된 1조 3,800억 원대의 재산분할 판결을 대법원이 뒤집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불법자금이 개입된 부분은 재산분할 근거로 삼을 수 없다”며 다시 심리하라고 한 것이다. 법리적으로는 타당한 판단일지 몰라도, 이번 판결이 던지는 메시지는 씁쓸하다. 한쪽은 불륜, 다른 한쪽은 불법. 재벌가의 개인사가 10년 넘게 공공의 시선을 붙잡고 있는 현실 자체가 이미 국민의 피로감을 넘어선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이혼 분쟁’이 아니다. 대한민국 권력과 자본의 유착,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진 불투명한 부의 대물림이 법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다. 노소영 관장이 주장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 원 지원이 SK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항변은, 결과적으로 그 돈의 성격이 ‘불법 원인 급여’일 가능성이 제기되며 되레 역풍을 맞았다. 이는 1990년대 정치권력과 재벌 간의 검은 거래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사회적 부담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최태원 회장은 이미 혼외 관계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며, 사실상 ‘두 가정’을 병행한 채 경영 일선에 서 있다. 재벌 총수의 불륜이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중이 무감각해진 현상 또한 문제다. 그가 그룹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하면서, 정작 ‘G(지배구조)’의 핵심인 윤리성과 책임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모순은 아이러니를 넘어 위선에 가깝다.
법원은 이제 불법자금의 성격을 가려내는 법리 판단에 집중하겠지만, 국민이 이 사건에서 느끼는 정서는 법보다 단순하다. “결국 다 가진 사람들끼리의 싸움”이라는 냉소다. 재벌가와 정치권력의 불투명한 과거가 아직도 현재의 분쟁을 규정하고, 그 불륜과 불법의 잔재를 국민이 매번 목격해야 하는 현실이야말로 사법 정의 이전의 사회적 피로를 낳는다.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이런 ‘권력가의 가정사’를 공적 이슈로 다뤄야 하는가. 법원은 법의 잣대를 들이대되, 국민이 더 이상 이런 사적 추문을 공적 담론으로 소비하지 않도록 재판의 공정성과 절제된 언어를 유지해야 한다. 또한 재벌가 역시 스스로의 도덕적 책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불륜으로 얼룩진 사랑도, 불법으로 축적된 부도, 결국 세월 앞에서 정당성을 얻을 수는 없다. 권력과 부의 상속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임의 세습’이다. 그것이 바로 국민이 이제 더는 피로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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