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14일이 다가오면 거리의 분위기는 어김없이 달라진다. 편의점과 백화점 진열대에는 하트 모양 상자가 쌓이고, 매장마다 사랑을 전하라는 문구가 걸린다. 초콜릿을 고르는 사람들, 카드에 적을 짧은 문장을 고민하는 얼굴들이 눈에 띈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그날이 어떤 날인지 떠올려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에게 2월 14일은 발렌타인데이다. 연인이나 지인에게 초콜릿을 건네며 마음을 표현하는 날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모습이 오래된 전통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에서 시작된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준다’는 방식이 동아시아로 퍼지면서, 이 날은 어느새 사랑의 상징이라기보다 소비의 행사처럼 자리 잡았다.
초콜릿이 많이 팔린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다만 그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잊혀 가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10년 2월 14일,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그는 서른한 살의 나이로 뤼순의 재판정에 섰다. 자신을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 밝히며, 그 행동이 동양의 평화를 위한 의거였다고 또렷하게 말했다. 재판정에서도, 감옥에서도,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조국과 동양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에게 2월 14일은 초콜릿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날이었다.
지금의 풍경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총성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광고 음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역사책 속 한 줄의 기록보다, 행사 진열대 앞의 인파가 더 익숙한 장면이 되었다. 한 청년이 사형 선고를 받았던 날이, 할인 문구와 선물 포장 사이에서 조용히 지나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사랑을 표현하는 날 자체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마음을 전하고 관계를 돌아보는 일은 소중하다. 다만 그 날이 기업의 기획 속에서 소비의 의식처럼 굳어졌다면, 그 과정에서 무엇이 밀려났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2월 14일은 초콜릿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청년이 조국과 동양의 평화를 말하며 사형 선고를 받은 날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알고 지나가는 것과, 아무것도 모른 채 보내는 것은 분명 다르다. 어떤 날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를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 달력을 보면 각종 기념일이 빼곡하다. 기업이 만든 날, 이벤트에서 비롯된 이름들이 곳곳을 채운다. 하지만 정작 기억해야 할 날은 그렇게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기억은 상품처럼 포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스스로 고르기보다, 광고가 알려 주는 날짜를 따라 감정을 소비한다. 그 사이에서 한 이름이 조금씩 뒤로 밀린다. 안중근이라는 이름이다.
기억은 저절로 남지 않는다. 누군가 말해 주고, 스스로 떠올리려 애쓸 때 비로소 이어진다. 초콜릿을 건네는 손길을 탓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 손길이 잠시 멈춰, 오늘이 어떤 날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본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사랑을 말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이름을 잊지 않는 일은, 그보다 더 오래 남는 사랑일지도 모른다. 2월 14일이 단지 달콤한 날로만 남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억의 시간은 늘 조용히 지나간다. 우리가 돌아보지 않으면, 그 시간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흘러가 버린다. 하지만 한 번쯤 시계를 멈추고, 그날의 이름을 불러본다면, 달력 속의 날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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