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강제동원 판결, 외교의 회피가 아니라 국가의 품격으로 답해야 한다 [사설] 강제동원 판결, 외교의 회피가 아니라 국가의 품격으로 답해야 한다](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5/12/image-35.png)
1945년 10월 10일 일본 후쿠오카 하카타(博多) 항에서 한국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근로정신대(女子勤勞挺身隊)의 모습이다. 오른쪽 깃발에는 “귀환 전라북도여자근로정신대”라고 적혀 있다. 이들은 대부분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10대 전반의 소녀들로, 1944년 봄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일제의 군수공장에 강제동원되었다. 여자근로정신대는 조선 내에 있는 병기창 등에 단기간 동원되기도 하였으나, 상당수는 일본에서 1년 이상 장기간 체재하는 것을 전제로 동원되었다. (사진제공=우리역사넷)
역사는 때로 법정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법정의 판결은 과거만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국가가 어떤 가치 위에 서 있는지를 묻는다. 대법원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다시 한 번 확정한 것은 그런 질문을 대한민국 사회에 던진 사건이다.
이번 판결은 새로운 법리가 아니다. 대법원은 이미 여러 차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은 불법적인 식민지 지배와 직결된 반인권적 행위이며, 이에 대한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왔다. 국가 간 재산·청구권 문제의 정리와, 개인이 입은 인격적·정신적 피해에 대한 권리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 사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여전히 “모든 청구권은 완전히 해결됐다”는 1965년의 문구만을 반복한다. 협정의 문장만을 앞세운 채, 그 협정이 체결되던 시기 피해자 개인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강제동원의 불법성과 비인도성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법적 해석의 차이를 넘어, 역사 인식의 간극이 여전히 깊다는 사실을 이번 판결은 다시 확인시켜 준다.
문제는 이 판결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강제동원 판결이 나올 때마다 ‘외교적 부담’과 ‘경제적 파장’을 이유로 논쟁을 미뤄왔다. 사법부의 판단과 행정부의 외교 사이에서 책임은 분산됐고, 피해자들은 또다시 기다림을 강요받았다. 법은 확정됐지만, 정의는 여전히 유예된 상태였다.
외교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안보 협력, 경제 교류, 국제 정세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외교가 법 위에 서거나, 피해자의 존엄을 거래의 대상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품격은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감당하는지에서 드러난다.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되, 그 후속 조치를 외교적 지혜로 풀어내는 것이 성숙한 국가의 역할이다.
일본 역시 이제는 과거의 문장 뒤에 숨기보다, 미래를 위한 결단을 고민해야 할 때다. 진정한 사과와 책임 있는 참여 없이는, 어떤 ‘미래지향적 관계’도 공허한 수사가 될 수밖에 없다. 강제동원 문제는 이미 국제 인권의 언어로 해석되고 있으며, 이를 외면하는 태도는 오히려 일본의 외교적 부담을 키울 뿐이다.
강제동원 판결은 한‧일 관계를 흔들기 위한 사법부의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법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 위에서 관계를 다시 세우라는 요구에 가깝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화해는 없고, 정의를 비켜간 외교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번 판결을 또 하나의 외교 갈등으로만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국가가 책임 있게 역사와 마주하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피해자들의 시간이 더는 정치와 외교의 뒤편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정부는 분명한 원칙과 일관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법원 판결이 요구하는 진짜 후속 조치이며, 법치와 인권을 국가의 근간으로 삼는 민주국가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다.
top_tier_1@naver.com






![[기억의 시간] 그들이 남긴 선택, 오늘의 우리는 무엇으로 답할 것인가 [기억의 시간] 그들이 남긴 선택, 오늘의 우리는 무엇으로 답할 것인가](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5/12/image-22-1024x589.png)
![[봉쌤의 책방] 기억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순간 [봉쌤의 책방] 기억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순간](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5/12/image-23-1024x607.png)
![[기억의 시간] 427년 전의 침묵, 오늘의 대한민국에 말을 걸다 [기억의 시간] 427년 전의 침묵, 오늘의 대한민국에 말을 걸다](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5/12/image-28.png)
![[사설] 미국이었다면 불출석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사설] 미국이었다면 불출석은 선택지가 아니었다](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5/12/image-3.png)
![[사설] 체납과의 전쟁, 조세정의라는 보편적 가치 [사설] 체납과의 전쟁, 조세정의라는 보편적 가치](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5/12/IMG_4864.jpe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