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시간] 한 사람의 철학이 세운 ‘글로벌 삼성’ [기억의 시간] 한 사람의 철학이 세운 ‘글로벌 삼성’](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5/11/image-152.png)
1987년 11월 19일. 한국 산업사의 한 장을 스스로 닫고 떠난 기업가가 있었다. 그는 생전에 권력에 기대지도, 명예를 좇지도 않았다. 그의 이름 앞에 붙은 단 하나의 수식어, ‘실업가(實業家)’. 삼성 창업자 호암(湖巖) 이병철.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삶은 단순한 기업 확장의 연대기가 아니라, 한 사람이 스스로를 다스리고 성장시키며 시대와 세계를 바꿔낸 내면의 역사다.
그의 경영철학의 핵심에는 ‘산업보국(産業報國)’이 있었다. 기업은 단순히 이윤을 창출하는 존재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한 책임을 수행하는 기관이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그는 늘 “기업이 강해야 나라가 강하다”는 생각을 강조했고, 모든 경영 활동은 산업을 발전시키고 국가 경제를 튼튼하게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에게 삼성은 단순한 사적 재산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위한 도구였으며, 이 믿음은 조직 문화와 사업 전략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는 삶의 모든 순간을 ‘사람됨’에서 출발했다. 사업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기준이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그는 먼저 자신을 통제하려 했다. 분노를 다스리고, 약속은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지키며, 결정해야 할 때는 지체하지 않고 하루의 끝에서 반드시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겉으로는 사소해 보이는 이 원칙들이 그의 모든 경영의 뼈대를 이뤘다. 그는 “작은 것을 소홀히 하면 큰일도 무너진다”는 생각을 평생 버리지 않았다. 기업의 운영은 회의실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책임자가 어떤 태도로 하루를 살아가는가에서 갈린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혁신은 외부의 압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부의 두려움을 다루는 방식에서 나왔다. 안주하면 무너진다는 절박함, 익숙함을 경계해야 한다는 직감, 조직이 스스로의 과거에 만족하는 순간 미래의 가능성이 닫힌다는 날카로운 판단이 그를 끊임없이 앞으로 밀어붙였다. 전자 산업 진출을 둘러싼 숱한 반대에도 그는 “미래는 기다리는 자의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자의 것”이라는 믿음으로 길을 선택했다. 품질을 최우선 가치로 둔 경영, 공정 자동화와 같은 변화는 근면과 책임을 강조하는 그의 관리 철학과 맞물려 조직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혁신이란 무엇을 새로 만드는 일이기보다, 자기 내부의 두려움을 기꺼이 마주하고 뛰어넘는 용기라는 것을 그는 몸소 보여준 셈이다.

세계로 눈을 넓히는 과정에서도 그는 누구보다 치열했다. 해외 시장은 단순한 확장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의 세계였다. 그는 세계의 기술 수준을 배우고, 글로벌 기업의 기준을 체득하며, 한국 기업이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설 자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과 조직을 단련했다. 가격이 아니라 품질을 통해, 모방이 아니라 기술 확보를 통해, 단기 성과가 아니라 장기적 신뢰를 통해 세계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당시 한국 산업계에서 보기 드문 시선이었다. 국가 경제 성장보다 기업의 시야가 더 빨리 확장되어야 한다는 믿음은 오늘날 글로벌 삼성을 가능하게 한 초석이 되었다. 모든 사업의 목표에는 산업보국의 정신이 깔려 있었고, 이는 그가 기업을 넘어 국가적 책임을 강조한 이유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것은 기업가로서의 태도다. 그는 기업이 국가의 공공 자산이며, 기업인은 시대적 책임을 지는 존재라고 여겼다. 권력의 비호를 거부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사업의 방향을 타협하지 않았다. 부를 쌓는 과정보다 ‘어떻게 쌓는가’를 더 중히 여겼으며, 기업의 이익과 국민의 신뢰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에게 ‘실업가’라는 이름이 강한 울림을 갖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떠난 지 38년이 지난 오늘, 그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과거의 추억 속에 잠기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일하고, 어떤 원칙을 지키며, 어떤 태도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기 위한 시간이다. 성과를 앞세우는 시대일수록 기본의 무게는 더 무겁고, 변화가 빠른 시대일수록 흔들리지 않는 중심은 더 필요하다. 스스로를 다스리고, 끊임없이 혁신을 고민하며, 세계를 향해 책임 있게 나아가던 그의 삶은 말없이 묻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 것인가. 그 질문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맞이한 진짜 기억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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