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메인
  • 밀양 성폭력 피해자 “공론화 바란 적 없다”

밀양 성폭력 피해자 “공론화 바란 적 없다”

성폭력상담소 통해 입장문 “유튜버 영상 사전협의 없었다… 2차 피해 없어야”

“상처만 주고 끝나지 않길 바란다”

상담소 “일부 가해자 가족 연락 와”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 자매가 13일 “많은 분이 제 일 같이 분노하고 걱정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반짝 피해자에게 상처만 주고 끝나지 않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밀양 사건의 피해자 자매의 이와 같은 서면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 단체는 밀양 성폭행 사건 피해자 지원단체 중 하나이다. 자매는 최근 유튜브에 당시 가해자들의 현재 신상을 밝히는 내용이 올라오는 등 다시 사회적으로 당시 사건이 이슈화되며 논란이 불거지자 입장을 밝힌 것으로 여겨진다.

밀양 성폭력 피해자 “공론화 바란 적 없다”
13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밀양 성폭력 사건은 지난 2004년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당시 밀양 지역 남고생 44명이 여중생이었던 피해자를 포함한 5명의 미성년자 여성을 대상으로 1년 동안 집단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이들 44명의 가해자들 중 제대로 처벌 받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지역경찰과 주민들의 비협조와 비호 아래 사건이 무마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담소는 가해자 신상을 공개한 유튜버 ‘나락보관소’, ‘판슥’에게 지난해 11월 피해자가 연락했던 것과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피해자의 여동생이 글을 올린 것에 대해 잘못 인식되는 점이 있다며 해명했다.

이들은 “나락보관소의 영상은 피해 당사자가 알기 전 내려주기를 원했던 것”이라며 “피해자 남동생이 보낸 메일로 인해 오해가 있었지만 피해자와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보배드림에 ‘밀양 사건의 피해자’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글 역시 피해자의 동생이 작성한 글이 맞다고 밝혔다. 해당 글에는 ‘유튜버 판슥이 피해자의 동의 없이 영상을 올렸다. 여동생인 제가 피해자(언니)에게 상황을 묻고 삭제 요청을 했는데 삭제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이어 “유튜버의 피해자 동의와 보호 없는 이름 노출,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동은 삼가달라”며 “무분별한 추측으로 피해자를 상처 받게 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이 사건이 잠깐 반짝하고 피해자에게 상처만 주고 끝나지 않길 바란다”며 “경찰, 검찰에게 2차 가해를 겪는 또 다른 피해자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잘못된 정보와 알 수 없는 사람이 잘못 공개돼 2차 피해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들은 “가끔 죽고 싶을 때도 있고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미친 사람처럼 울 때도 있고 멍하니 누워만 있을 때도 자주 있지만 이겨내 보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얼굴도 안 봤지만 힘내라는 댓글과 응원에 조금은 힘이 나는 거 같다. 혼자가 아니란 걸 느꼈다. 잊지 않고 관심 가져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13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혜정 상담소 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피해자가 공론화를 바란 적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 소장은 “지난해 11월 피해자가 판슥에게 전화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고민 상담을 해준다는 공지를 보고 고민상담을 하기 위해 연락한 것”이라며 “공론화라는 단어를 쓴 바도 없고 공론화를 바란다고 하는 취지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또 다른 영상에서는 (판슥이) 피해자의 이름을 부르며 이를 묵음 처리했지만 입모양을 노출하면서 피해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특정할 수 있게 했다”며 지적했다.

김 소장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며 “유튜버들에게는 가해자들의 삶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이 도전적인 프로젝트처럼 콘텐츠화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 과정들이 피해자에게는 어떨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기획이라는 점이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가) 본인에 대해 계속 언급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피해자 의사가 반드시 존중돼 삭제되기를 피해자와 함께 요구 드린다”고 했다.

밀양 사건이 다시 불거진 것은 최근 유튜브 채널 ‘나락 보관소’에서 당시 성폭력 가해자의 근황을 공개하는 영상을 게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지난 3일 유튜버 ‘나락 보관소’는 가해자 중 한 명인 A씨가 모 수입차 영업사원으로 근무한다는 사실과 함께 사진과 핸드폰 번호 등을 공개했다. 이후 A씨가 근무했던 수입차 대리점은 논란을 인지하고 A씨를 해고 조치했다는 공지문을 게시했다.

이후 ‘나락 보관소’는 다른 직간접적 가해자들에 대한 영상을 올렸지만 오히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현재 영상들은 모두 내려진 상태이다.

또 다른 유튜버 ‘판슥’은 9일 가해자들의 현재 신상을 공개함은 물론 피해자와 가족과 나눈 통화 녹음본과 해당 사건의 판결문까지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여동생이 직접 글을 올려 해당 영상에 대해 항의하는 글을 올린 것이다.

대중들이 이들 유튜버들의 행동에 대해 호응한 것은 일반 국민들이 당시 경찰의 부실한 수사와 더불어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분노를 나타낸 것이라 해석된다. 하지만 동시에 사적제재의 문제점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사건과 무관한 인물을 당시 가해자로 오인해 영상을 올리는 등 문제점이 불거지기도 했다.

범죄심리학자인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지난 5일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렇게 사적제재가 지속되면 법질서가 우르르 무너질 것이다”라며 우려하는 한편 “형사사법제도가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과실로 인해서 사적제재가 호응을 받고 거의 영웅 대접을 받게 되었다”며 현 사법제도를 비판했다.

zerosia83@gmail.com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