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생각한 것보다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너무 일찍 귀국했다.
민주당은 원칙론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이렇게 금방 결정을 내릴지 몰랐는지 다급하게 이재명 대표까지 나서 이 대사를 해임하고 출국금지해야 한다고 공격의 방향을 틀었다.
이 대표는 21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이종섭 대사를 해임하고 출국 금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종섭 대사가 21일 오전 ‘6개 방산 수출국 대사 회의’를 이유로 급거 귀국함에 따라 이 대표만 무색해졌다. 동시에 이 대표와 공수처를 향해 공격의 방향이 바뀌는 국면전환이 이루어졌다.
이 대표는 기소 조차 당하지 않은 이 대사를 두고 ‘압송’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비난했다. 하지만 이미 4개 혐의의 중범죄로 기소 당한 이 대표가 활발히 정치 활동을 하는 입장인지라 바로 되치기 당하고 있다.
이 대사의 귀국한 당일, 시사 프로의 우파 성향 패널인 김광삼 변호사는 21일 “정치인 중에서 이재명 대표처럼 엄청난 혐의로 기소되고 법원에 가서 재판 받는 사람이 누가 있냐”면서 “(이재명 대표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고 맞받아쳤다.
민주당은 사그라드는 ‘이종섭 해외 도피’ 프레임의 불씨를 다시 되살리기 위해 이 대사의 귀국에 맞춰 인천공항에 모였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를 필두로 안귀령 서울 도봉갑 예비후보, 노종면 부평갑 예비후보 등 10여 명의 의원들은 ‘피의자 이종섭 즉각해임, 즉각수사’라는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MBC와 민주당 등에 이 대사 관련 수사 자료를 빼돌린 것으로 의심 받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이 대사는 귀국 후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임시 귀국한 것은 방산 협력과 관련한 주요국 공관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함”이라며 “체류하는 동안 공수처와 일정이 조율이 잘 되어서 조사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공수처는 말을 아끼고 있다.
공수처는 20일 “현재 수사팀이 언론 보도만 접한 상황이어서 특별히 말씀드릴 입장이 없다”고 공지했다. 이 대사가 전격 귀국함으로써 조속한 소환조사를 압박하는 목소리가 커지며 공수처 내부적으로는 난감해하는 기류다.
공수처는 지난 1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과 국방부 조사본부 등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의 포렌식 작업도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다. 압수물 분석과 함께 하급자부터 차례로 조사하며 사실관계를 다진 뒤 ‘윗선’인 이 대사를 소환해야 하는데, 아직 부하 직원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공수처는 여권의 조기 소환 압박에 밀려 알맹이 없는 형식적 조사를 반복하기보다는 여유를 갖고 조사 시기를 조율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공수처에서 유출된 이 대사의 호주 부임과 출국금지 관련한 정보가 파장을 일으키며 스스로 제 발등을 찍었다는 평가이다.
19일 오후 변호인을 통해 조속히 조사 기일을 지정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한 이 대사는 귀국 즉시 신속한 조사를 촉구하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조사가 늦어질 경우 여권의 ‘수사 지연’ 주장에 힘이 실리고 공수처는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반대로 이 대사를 서둘러 불렀다가는 충분한 조사도 하지 못한 채 당당히 호주로 돌아갈 명분만 만들어주는 셈인 만큼 공수처도 고민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공수처는 외부와의 소통을 중단하고 내부적으로는 적절한 소환 일정을 고심할 것으로 관측되지만 이 대사가 한국에 체류할 최대 3주의 기간 내에 모든 자료가 검토될지는 미지수다.
현재 공수처는 지난 1월 말 김진욱 처장과 여운국 차장이 잇달아 퇴임한 뒤 두 달째 지휘부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더군다나 검사와 조사관 모두 지원자가 없어 정원에 미달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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