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아래가 서로를 좇는 정치, 정당추천제는 왜 흔들리는가 [사설] 위아래가 서로를 좇는 정치, 정당추천제는 왜 흔들리는가](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6/01/image-44-1024x683.png)
정당의 공천은 후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며, 유권자가 행사하는 선택권의 전제가 되는 절차다. 누가 공직에 나설 자격이 있는지를 가르는 공천 과정이 흔들릴 때, 선거의 공정성과 대표성은 그 뿌리부터 의심받게 된다. 최근 강선우 의원과 김경 시의원을 둘러싼 공천 헌금 의혹은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불러냈다.
김경 시의원은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과 관련해 금전이 오갔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선우 의원 측은 직접적인 수수 사실은 없으며 반환 조치를 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사실관계의 진위는 수사기관이 가릴 몫이다. 그러나 이번 사안이 던지는 본질적 문제는 이미 분명하다. 공천 과정은 과연 국민 앞에 투명했는가, 그리고 그 구조는 과연 건강한가라는 물음이다.
공천 헌금 의혹은 특정 인물이나 특정 정당만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다. 공천권이 소수에게 집중될수록, 그 주변에 부당한 거래의 유혹이 따라붙는 것은 정치의 오랜 경험칙이다. 제도는 개선됐다고 말하지만, 현실 정치의 관행은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지방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지방의원과 기초·광역 단체장은 주민의 선택으로 선출되지만, 실제 정치 생명은 정당추천제에 크게 의존한다. 공천권을 쥔 중앙정치, 특히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국민의힘에서는 당협위원장,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지역위원장이 사실상 지방선거의 관문 역할을 해 왔다. 그 결과 지방선거는 지역 행정의 경쟁이 아니라 중앙정치의 대리전으로 변질됐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지방정치인이 주민만을 바라보고 소신 있게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당론과 다른 판단은 곧 공천 배제의 위험으로 되돌아온다. 침묵과 순응은 정치적 생존 전략이 되고, 책임과 소신은 뒷순위로 밀린다. 여기서 떠오르는 고전의 경계가 있다.
『한비자(韓非子)』 「유도(有度)」편에는 “상하상순(上下相徇)하면 국이망(國以亡)한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위에 있는 자와 아래에 있는 자가 서로의 이익과 안위를 좇으며 원칙을 잃을 때, 국가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진다는 뜻이다. 법과 제도가 기준이 되는 정치가 아니라, 권력자와 그에 종속된 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공모하는 구조를 한비자는 가장 경계했다. 상이 법을 버리고 아랫사람의 환심을 사고, 하가 원칙 대신 상의 뜻을 따를 때 국정은 사사로움에 잠식된다는 경고였다.
오늘의 지방정치에서 이 상하상순의 구조는 낯설지 않다. 중앙정치는 공천권을 통해 지방을 통제하고, 지방정치는 공천을 위해 중앙의 눈치를 살핀다. 위와 아래가 서로를 견제하기는커녕, 서로의 이해를 좇는 구조 속에서 주민은 정치의 중심에서 밀려난다.
정당추천제가 애초에 내세운 명분은 책임 정치였다. 정당이 후보를 추천하고, 유권자가 정당을 통해 정책과 인물을 함께 평가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현실에서 책임의 방향은 주민이 아니라 정당으로 향해 있다. 지방의회는 집행부를 견제하기보다 같은 당이라는 이유로 침묵하고, 지방행정은 생활의 문제보다 중앙정치의 이해관계에 흔들린다. 지방정치가 국회의 하위 조직처럼 기능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비교 대상은 이미 존재한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추천 없이 치러진다. 완전한 제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국회의 여야 대립이 교육 행정을 직접 지배하는 구조는 상당 부분 차단해 왔다. 지방행정을 책임지는 기초·광역 단체장과 지방의원 선거 역시 이 기준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당추천제 폐지에는 유권자의 판단 부담, 후보 검증의 어려움 같은 우려가 따른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가 낳고 있는 종속과 침묵, 그리고 반복되는 공천 논란의 비용은 이미 그 우려를 넘어섰다. 제도의 편의가 민주주의의 본질을 잠식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의 부속물이 아니다. 주민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책임지는 독립된 정치 영역이다. 그럼에도 위아래가 서로를 좇는 상하상순의 구조가 지속된다면, 지방자치는 이름만 남은 제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기초·광역의원은 물론 기초·광역 단체장까지 정당추천제 폐지를 포함한 제도 개편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정당의 논리가 아니라 생활의 논리가 지방정치를 이끌 때, 공천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출발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방어가 아니라 성찰이고, 미봉이 아니라 구조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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