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혁신당이 잇따른 성비위 사건과 지도부 붕괴 사태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당직자들의 상습적 성희롱과 권력형 괴롭힘, 그리고 이에 대한 당 지도부의 무책임한 대응은 혁신을 기치로 내세운 정당의 본령을 무너뜨리는 치명적 일탈이다. 피해자가 침묵 속에 고통을 감내하는 동안, 지도부는 사건 축소와 책임 회피에 급급했고, 일부 고위 당직자는 “성희롱은 범죄가 아니다”라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 결과 당의 선명성은 실종되고, ‘혁신’이라는 이름은 가장 뼈아픈 아이러니가 되었다.
정당의 정체성은 단순한 강령이나 구호가 아니라, 조직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드러나는 태도와 행동에서 증명된다. 그러나 조국혁신당은 이번 사안에서 피해자 보호보다는 당내 권력 안정을 우선시했다. 외부 조사기구 설치에 한 달이 넘게 걸린 지체, 2차 가해성 발언의 방치,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조롱은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들겠다던 약속을 스스로 폐기한 행위다. 결국 강미정 전 대변인의 탈당과 지도부 총사퇴라는 파국으로 이어졌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일 뿐 근본적 성찰을 담보하지 않는다.
더욱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지도부와 핵심 인사들이 보여준 침묵과 회피이다. 정당이 성비위 사건을 조직적 위기로 인식하기보다, “당을 흔드는 배은망덕”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진영 논리로 사건을 봉합하려 한 태도는 민주정당이라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작태다. 이는 조국혁신당이 강조해온 ‘도덕적 우위’와 ‘사회개혁’의 명분을 근본부터 잠식한다.
혁신의 길은 말이 아니라 실천에서 비롯된다. 피해자 보호를 제1원칙으로 세우고, 성비위 사건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제도화하며, 지도부의 책임성을 명확히 하는 조직적 개혁이 없다면 조국혁신당은 ‘혁신’을 말할 자격조차 없다. 국민은 ‘누구보다 엄정한 기준’을 내세우는 정당이 정작 내부 문제에 관대하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일 때, 가장 큰 배신감을 느낀다.
조국혁신당은 이번 사태를 일개 스캔들이 아니라 당의 존립을 좌우할 정체성 위기임을 직시해야 한다. 혁신 없는 혁신당은 존재 이유가 없다. 이제라도 성찰과 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조국혁신당은 국민의 정치적 선택지에서 조용히 퇴장당할 것이다.
jp.bong5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