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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헌정 수호의 장치인가 사법 불신의 제도화인가

[사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헌정 수호의 장치인가 사법 불신의 제도화인가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국회가 23일 ‘내란·외환·반란 범죄 등의 형사절차에 관한 특례법’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이다. 내란죄 등 국가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직접 위협하는 범죄를 전담해 심리할 재판부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에 각각 두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법의 전문성과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라고 설명하지만, 이 법이 등장한 정치적 배경을 외면한 채 순수한 제도 개선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번 법안은 ‘내란이라는 범죄의 중대성’이라는 명분 위에 세워졌지만, 그 이면에는 오늘의 사법부에 대한 정치권, 특히 민주당의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그 불신의 초점은 윤석열 정권에서 임명된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와, 그 아래에서 이어져 온 사법부 상층의 행보에 맞춰져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 교체 이후에도 사법부의 기류가 바뀌지 않았다는 인식이 누적돼 왔다. 이재명 대통령과 관련된 일련의 사법 절차를 둘러싸고 제기된 문제 제기들은 단순한 판결 불만을 넘어선다. 사건 처리 속도의 이례성, 설명 없는 결정이 낳는 정치적 파장, 사법행정 수뇌부의 선택적 침묵은 ‘법의 형식을 빌린 정치’라는 해석을 낳기에 충분했다. 이 같은 인식이 쌓이면서, 민주당은 개별 판사나 재판부의 판단에 국가적 사건을 맡기는 구조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됐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는 이러한 불신이 제도적 언어로 번역된 결과라 볼 수 있다. 사법부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거나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대신, ‘전담’이라는 이름으로 구조를 바꾸는 방식이다. 신뢰를 전제로 한 위임이 아니라, 신뢰의 결여를 전제로 한 통제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내란죄는 특수하다. 군과 정보기관, 정치 권력이 얽히고, 재판 과정 자체가 국가 안정과 직결된다. 이런 사건을 일반 형사사건과 동일한 틀에서 다루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정당하다. 재판부에 가해질 정치적 압박과 사회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합의부를 구성하자는 취지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사법 제도는 명분만으로 설계될 수 없다. 헌법은 특별재판소 설치를 금지하고, 자연법관주의를 사법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특정 범죄 유형을 이유로 별도의 재판 구조를 만드는 순간, 그 경계는 극도로 조심스럽게 관리돼야 한다. 이번 법안이 특정 시점, 특정 사건, 특정 인물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속에서 추진됐다는 사실은 이 제도의 순수성을 스스로 훼손한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 법이 사법부와 정치권 사이의 불신을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고착화할 가능성이다. 정치권이 사법부를 믿지 못해 구조로 묶고, 사법부는 정치권의 시선을 의식하며 방어적으로 움직이는 악순환이 시작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사법의 권위는 법률 조항이 아니라, 공정성과 절제, 그리고 거리 두기에서 나온다.

내란전담재판부는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사법에 대한 정치적 불신이 제도화된 위험한 선례가 될 수도 있다. 그 갈림길은 법을 만든 국회가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의 태도에 달려 있다. 정치의 논리에서 한 발짝 더 물러나, 법의 언어로만 말할 수 있을 때에만 이 법은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사법은 정치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정치적 격변기일수록 사법은 더 엄정해야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 제도가 사법부를 더 강하게 만들지, 더 의심받게 만들지는 이제 사법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top_tier_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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