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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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식탁에서 시작된 변화가 한 가족을 흔들고, 마침내 사회 전체를 불편하게 만드는 데까지 이른다면, 그 변화는 과연 ‘개인의 취향’으로만 치부될 수 있을까. 한강의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한 여성의 조용한 선언은, 폭력과 규범, 정상성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돼 온 세계의 균열을 드러낸다.
소설의 주인공 영혜는 어느 날 갑자기 채식을 시작한다. 그 이유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악몽 때문이라는 짧은 언급이 전부다. 그러나 이 ‘설명되지 않음’이야말로 작품의 핵심이다. 『채식주의자』는 인과관계를 친절히 제시하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타인의 선택을 어디까지 이해하려 노력했는가,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정당화해 온 것은 아닌가.
작품은 세 개의 장,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흥미롭게도 영혜 자신의 시점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을 통해서만 영혜는 묘사된다. 이는 영혜가 한 개인으로서 온전히 발화할 기회를 박탈당한 존재임을 상징한다. 그녀는 말하지 않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인물이다. 그 침묵은 순응이 아니라 저항에 가깝다.
첫 장에서 영혜의 남편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아내가 특별하지 않기를 바라고, 눈에 띄지 않기를 원한다. 영혜의 채식은 그의 일상과 체면을 위협하는 사건이다. 가족 식사 자리에서 벌어지는 폭력적인 장면은,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가 개인의 몸에 어떻게 개입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버지의 강요, 가족들의 묵인은 ‘사랑’이나 ‘걱정’이라는 말로 포장되지만, 그 본질은 통제다.
두 번째 장 ‘몽고반점’에서 시선은 형부에게로 옮겨간다. 예술을 명분으로 한 욕망, 금기를 가장한 착취가 영혜의 몸 위에 투사된다. 여기서 영혜는 인간이기보다 하나의 이미지, 혹은 대상이 된다. 예술과 자유를 말하지만, 그 역시 타인의 몸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삼는 또 다른 폭력임을 소설은 냉정하게 드러낸다. 폭력은 더 이상 명령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 대신 이해와 공감, 자유라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교묘하다.
마지막 장 ‘나무 불꽃’에서 언니 인혜는 가장 복잡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끝까지 현실에 남아 있는 사람이며, 가족과 생계를 짊어진 채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려 애써 온 인물이다. 그런 인혜의 시선에서 영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혜는 묻는다. “우리는 정말로 잘 살아왔던 걸까.” 이 질문은 소설이 독자에게 던지는 마지막 물음과 겹쳐진다.
이 지점에서 『채식주의자』의 결말은 독자에게 분명한 안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영혜는 죽었다고도, 살아 있다고도 명확히 말해지지 않는다. 구원도 회복도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을 두고 “매우 불편하고 뒤끝이 남는 결말”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감상 차원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채식주의자』라는 작품의 본질을 정확히 짚은 말이다. 이 표현은 독서 모임에서도, 서평에서도, 칼럼에서도 전혀 과하지 않다. 오히려 이 소설이 어디까지 도달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에 가깝다.
『채식주의자』는 폭력적인 장면과 불편한 이미지로 인해 종종 ‘난해하다’거나 ‘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 소설의 불편함은 의도된 것이다. 한강은 독자를 안락한 자리에서 끌어내린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정상성, 건강함, 가족, 사랑이라는 개념들이 얼마나 쉽게 폭력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독자가 판단을 끝내지 못한 채 책을 덮도록 만드는 것, 바로 그 지점까지 계산된 결말이다.
영혜가 끝내 인간의 삶을 거부하고 식물이 되기를 꿈꾸는 선택은 극단적이다. 그러나 그 극단성은 오히려 질문을 또렷하게 만든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살아내는 것이 과연 유일한 ‘정상’인가. 『채식주의자』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끝내 지워지지 않는 장면과 문장으로 독자의 내부에 질문을 남긴다.
이 소설이 세계 문학의 무대에서 주목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정 문화권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폭력과 침묵, 규범의 문제는 보편적이다. 한강의 문장은 절제되어 있으나 잔혹하고,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다. 『채식주의자』는 읽는 동안보다 읽고 난 뒤 더 깊이 작동하는 소설이다.
[봉쌤의 책방]에서 다시 꺼내 든 『채식주의자』는 묻는다. 우리는 지금도 누군가의 침묵을 ‘이해 불가’라는 말로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그 침묵 앞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인간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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