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국은 유럽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고 했던 펜싱. 불과 20여 년 전까지 세계 펜싱계의 변방국 취급 받았던 한국 펜싱이 드디어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값진 금메달을 획득했다.
28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한국 남자 사브르 종목의 에이스 오상욱이 결승에서 파레스 페르자니(튀니지)를 15-11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상욱의 금메달은 한국 남자 사브르 종목에서 최초의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이다. 이전까지 남자 사브르 개인전 최고 성적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와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김정환이 획득한 동메달이었다.
오상욱은 뛰어난 체격 조건과 순발력을 동시에 갖추어 국제 무대를 평정할 펜서로 주목 받아왔다.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 키가 192㎝로 서양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 당당한 체구를 갖췄다. 성인 국가대표 데뷔전인 2015년 2월 이탈리아 파도바 월드컵부터 입상(동메달)에 성공한 그는 긴 팔다리를 갖추고 스피드도 떨어지지 않아 국제 무대에서 ‘펜싱 몬스터(괴물)’로 불리고 있다.
오상욱과 오래 국가대표 생활을 함께한 김정환 KBS 해설위원은 “오상욱의 공격이 많이 주목받지만, 사실 공격을 위해 상대를 끊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 그게 보기보다 쉬운 게 아닌데, 오상욱의 탄탄한 하체가 상대의 어떤 긴 공격에라도 반격할 수 있게 한다”면서 “오상욱의 펜싱은 70%가 다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올림픽 남자 사브르 개인전 4연패에 도전한 아론 실라지(헝가리)가 첫 경기인 32강에서 세계랭킹 30위권 선수에게 덜미를 잡혀 탈락한 것을 시작으로 이변이 속출한 이번 대회에서 오상욱은 그간의 기다림을 피스트에서 풀어내며 ‘최후의 승자’로 남았다.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 2019년과 올해 아시아선수권대회,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보유했던 그는 이번 올림픽 금메달로 ‘개인전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다.
펜싱 변방에 불과했던 한국 펜싱을 세계 선두로 끌어 올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펜싱 플뢰레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김영호 선수이다. 이때 그가 딴 금메달은 한국은 물론 아시아 남자 펜싱 사상 최초의 금메달이었을 정도로 유럽 펜싱의 벽은 아시아 국가가 뚫을 수 없을 정도로 높고 강했다.
하지만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김지연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펜싱은 대 전환기를 맞게 된다. 이후 세계로 뻗어 나가던 한국 펜싱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남자 에페 개인전에서 박상영이 금메달, 2020 도쿄올림픽에서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로 승승장구하던 중 이번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오상욱이 금메달을 따 정점을 찍었다.
한편 오상욱이 금메달을 딴 그랑팔레 현장엔 2012 런던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 참관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관중석을 지키며 응원을 보냈다. 또한 경기 후 시상식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메달 시상자로 나와 오상욱에게 직접 금메달을 걸어주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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