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사서 ‘독립’ 언급 안했지만 “中, 무력침공 포기 안해…세계 평화·안정 최대 도전” 비판
中에 “대등하게 대화하고 관광·학생 교류하자”…”반도체·AI·보안 등 ‘5대 신뢰산업’ 발전시켜야”
대만·민주주의 각각 79회·31차례 언급돼 차이잉원 때보다 늘어…중국도 0차례→7차례로 ↑
라이칭더 대만 신임 총통은 20일 취임사를 통해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와 관련, 전임 차이잉원 8년 집권 기조를 견지하며 현상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라이 신임 총통은 중국의 무력 침공 위협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경고하면서도 중국과 대화·교류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라이 총통은 이날 오전 11시(현지시간)께 타이베이 총통부 앞에서 한 취임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전과 가자 전쟁을 거론하면서 “중국의 군사행동 및 회색위협(본격적인 전쟁 수준에는 못 미치지는 정치적 목적 등을 띤 도발 행위) 역시 세계 평화·안정의 최대 전략적 도전으로 간주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아직 대만 무력 침공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의 각종 위협을 맞아 우리는 국가 수호의 결심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친미·독립’ 성향 민주진보당(민진당) 당수로서 올해 1월 대선에서 승리한 라이 총통은 “1996년 오늘, 대만의 첫 민선 총통(리덩후이)은 취임 선서를 하면서 국제 사회에 ‘중화민국 대만은 주권·독립 국가로 주권은 국민에 있다’고 밝혔다”고 말했지만, 자신의 발언으로 ‘독립’을 언급하지는 않은 채 ‘현상 유지’를 강조했다.
라이 총통은 “양안 미래가 세계 형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민주화된 대만을 계승하는 우리는 평화의 조타수가 될 것”이라며 “새 정부는 ‘네 가지 견지’를 계승하면서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고(不卑不亢), 현상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는 또 중국이 대만을 향한 위협을 중단하고, 대만과 함께 세계적 책임을 져 대만해협 및 지역의 평화·안정 유지에 힘쓰며, 세계가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를 호소한다”고 했다.
‘네 가지 견지’란 전임 차이잉원 정부가 2021년 발표한 양안 관계 원칙으로 ▲ 자유·민주 헌정 체제를 영원히 견지 ▲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상호 불예속 견지 ▲ 주권 침범·병탄 불허 견지 ▲ ‘중화민국 대만’의 앞날 견지와 전체 대만 인민의 의지 준수를 그 내용으로 한다.
중국은 이 원칙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반하는 ‘양국론'(兩國論)이자 대만 독립을 추동하는 것이라며 비난해왔다. 상대적으로 중국에 유화적 태도를 보여온 원내 제1당 국민당과 캐스팅보트를 쥔 제3당 민중당 역시 수용하지 않는다.
라이 총통은 “나는 중국이 중화민국(대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대만 인민의 선택을 존중하며, 성의를 보이기를 희망한다”면서 “대만이 선출한 합법적인 정부와 대등·존엄 원칙 하에서 대화로 대결을 대체하고, 교류로 포위를 대체해 협력을 진행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는 “우선 양자 대등한 관광·여행과 (중국) 학생의 대만 취학부터 시작해 함께 평화·공동 번영을 추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라이 총통은 이날 ▲ 국방력 강화 ▲ 경제 안보 구축 ▲ 안정적이고 원칙 있는 양안 관계 지도력 구현 ▲ 가치외교 추진 ▲ 글로벌 민주 국가와 공동체 형성을 통한 억제력 발휘 등을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미래의 세계를 전망해보면 반도체가 없는 곳이 없고, AI의 물결이 휩쓸고 있다”며 “지금의 대만은 반도체 선진 제조 기술을 장악해 AI 혁명의 중심에 서있고, ‘글로벌 민주주의 공급망’의 핵심으로서 세계 경제 발전과 인류 생활의 행복·번영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자평했다.
라이 총통은 “우리는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지위에 안정적으로 서서 지정학적 변화가 가져온 비즈니스 기회를 잘 포착, 반도체·AI·군사·보안·차세대 통신 등 ‘5대 신뢰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며 “우리는 대만이 ‘드론 민주주의 공급망’의 아시아 중심지가 되게 하고, 차세대 통신 중저궤도 위성을 발전시켜 세계 우주 산업으로 진군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30분가량 이어진 총 5천440자 분량의 취임 연설에서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민주’는 모두 31회 언급돼 차이잉원 전 총통의 2016년(24회)과 2020년(9회) 연설 때보다 횟수가 늘었다.
라이 총통은 지난 1월 총통 선거 당시에서도 민진당 집권 반대에 나선 친중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에 맞서 ‘대만 민주주의 수호’를 강조하며 민심의 지지를 받았다.
‘대만’도 79회로 2016년(41회)과 2020년(49회) 언급 빈도를 뛰어넘었고, 대만을 뜻하는 ‘중화민국’ 역시 9회로 2016년(5회)·2020년(5회)보다 많이 언급되는 등 중국과의 차이점을 더 부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차이잉원 정부가 도입한 국호인 ‘중화민국 대만’도 3회 쓰였다.
차이잉원 전 총통의 앞선 두 차례 취임 연설 때는 ‘중국’이나 중국을 의미하는 ‘대륙’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이번 취임 연설에는 ‘중국’이 총 7회 언급돼 눈길을 끌었다.
(타이베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