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책임을 피해간 기업, 시민의 선택은 더 분명해졌다 [사설] 책임을 피해간 기업, 시민의 선택은 더 분명해졌다](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6/01/image-53-1024x683.png)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단순한 기업 사고를 넘어, 한국 사회가 기업의 책임을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지를 묻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된 중대 사건 앞에서 국민이 기대한 것은 복잡한 법리 공방이나 외교적 언사가 아니라, 문제의 전모를 설명하고 책임을 감내하겠다는 최고 책임자의 분명한 태도였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책임의 무게는 분산됐고, 그 빈자리는 시민의 불신으로 채워지고 있다.
문제를 더 키운 것은 그 이후의 대응이다.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중대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최고 책임자는 국회 청문회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는 법적 쟁점 이전에 공적 책임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로 읽힌다. 설명과 사과 대신 침묵과 거리 두기가 반복되면서, 사태는 진정되기보다 증폭됐다.
쿠팡 사태가 더 큰 논란을 낳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책임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할 인물이 제도 안으로 들어와 설명하고 판단을 구하기보다, 책임의 경계를 흐리는 선택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법적 회피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문제 해결 방식 또한 논란을 키웠다. 쿠팡은 국내의 문제 제기를 ‘차별’과 ‘과잉 규제’로 규정하며,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와 통상 압박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국에서 발생한 문제를 한국의 제도와 절차 안에서 풀기보다, 외부 권력을 끌어들여 압박하려는 모습으로 비친 것이다. 이는 비유하자면, 한 동네에 들어와 장사를 하며 이익을 얻던 장사치가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히자 사과와 수습 대신, 힘으로 유명한 외부 깡패에게 “저 동네 사람들을 혼내 달라”고 부탁하는 격이다. 자신의 과실을 덮기 위해 더 큰 힘을 불러들이는 행태는 책임 있는 기업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이 사안이 던지는 경고는 오래된 고사성어 하나로 요약된다.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疏而不漏). 『노자(老子)』 제73장에 나오는 말로, 하늘의 그물은 넓고 성글어 보이지만 끝내 빠져나갈 수는 없다는 뜻이다. 당장은 제도의 틈을 이용해 책임을 피하는 듯 보일 수 있으나, 그 선택은 결국 더 큰 책임으로 되돌아온다. 회피의 시간만큼 신뢰의 손실은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확실히 누적된다.
시민의 반응은 이미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공식적인 탈퇴자 총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개인정보 유출 논란 이후 쿠팡의 일간 활성 이용자 수(DAU)가 단기간에 100만 명 이상 감소했다는 외부 분석과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탈팡’이라는 표현은 감정적 유행이 아니라, 신뢰 상실에 대한 집단적 의사 표현에 가깝다. 이용하지 않을 자유는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이며, 민주사회에서 가장 평화적인 불복의 방식이다.
일각에서는 시민의 탈퇴와 불이용 움직임이 과도하다고 생각할수도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기업을 무너뜨리자는 데 있지 않다. 책임 있는 설명, 진정성 있는 사과,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적 조치가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만약 사건의 책임자들이 국민 앞에 서서 책임을 인정하고 개선책을 제시했다면, 상황은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끝내 책임을 외면하고, 외교적·통상적 압박 뒤에 숨는 선택을 지속한다면 시민의 판단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기업의 신뢰 상실과 경영 위기로 귀결된다 해도, 이는 시민이 만든 위기가 아니라 기업 스스로 초래한 결과다.
관용은 책임 위에서만 성립한다. 국회 위에 선 자본은 없고, 시민 위에 선 기업도 없다. 천망회회 소이불루라는 오래된 경구처럼, 지금은 빠져나간 듯 보일지라도 책임은 언젠가 되돌아온다. 쿠팡 사태는 한국 사회가 그 원칙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그리고 시민의 선택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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