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침문즉죄의 경고, 집이라는 마지막 선 [사설] 침문즉죄의 경고, 집이라는 마지막 선](https://telegraphkorea.com/wp-content/uploads/2026/01/IMG_5644-1024x683.jpeg)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개인의 존엄과 안전, 그리고 일상의 평온이 가장 깊숙이 자리한 공간이다. 그래서 법은 집을 특별하게 보호한다. 집주인의 명확한 동의 없이는 누구도 함부로 들어설 수 없고,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관조차도 엄격한 요건과 절차 없이는 그 문턱을 넘지 못한다. 법치국가에서 집이 갖는 의미는 그만큼 무겁다.
이 원칙은 오래된 말 한마디로 요약된다. 침문즉죄(侵門則罪). 문을 침범하는 순간, 그 자체로 죄가 성립된다는 뜻이다. 무엇을 훔쳤는지, 폭행이 있었는지, 범행의 의도가 어디까지였는지는 그다음 문제다. 집이라는 경계선을 넘는 행위 자체가 이미 공동체의 질서를 근본부터 흔드는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이다.
최근 배우 겸 가수 나나의 자택에 침입해 강도상해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 A씨의 재판은 이 원칙이 왜 여전히 유효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A씨는 첫 공판에서 공소사실 대부분을 부인하며 “빈집인 줄 알고 들어갔고 절도만 하려 했다”,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고 오히려 일방적으로 폭행당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자신이 다친 점을 근거로 피해자인 나나를 살인미수 혐의로 역고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사건의 본질은 단순하다. A씨는 스스로 범죄의지를 가지고 타인의 주거 공간에 침입했다. 사다리를 이용해 베란다로 올라가 잠기지 않은 문을 열고 들어간 행위 자체가 이미 중대한 범죄다. 그 이후 벌어진 모든 상황은 이 불법 침입에서 비롯됐다. 우연한 충돌이나 즉흥적 다툼이 아니라, 침입자가 선택하고 실행한 범죄의 연쇄였다.
집 안에서 낯선 침입자를 마주한 피해자의 공포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무엇을 훔칠 생각이었는지, 흉기를 들었는지 여부를 따지기 전에, 집이라는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이 침범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일상은 무너진다.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가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 누군가 집에 들어와 그런 짓을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고 되묻는 장면은 상식의 언어에 가깝다.
문제는 가해자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전가되는 듯한 역설적 장면이다. 절도범이 주거침입 과정에서 제압당하고 다쳤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살인미수로 고소하는 현실은, 정당방위의 의미를 근본부터 흔든다. 실제로 경찰은 나나의 행위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언론과 재판정에서 “오히려 내가 죽을 뻔했다”고 주장하는 모습은, 침문즉죄의 원칙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정당방위는 면죄부가 아니다. 그러나 주거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불법 침입자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대응까지 범죄로 몰려서는 안 된다. 공권력이 모든 주거침입 범죄를 실시간으로 막아줄 수 없는 현실에서, 개인에게는 최소한의 방어권, 보호권이 보장돼야 한다. 자신의 집에서조차 몸을 사리다 피해자가 돼야 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안전을 포기한 것이다.
범죄의지가 없었다는 주장으로 주거침입의 무게가 가벼워질 수는 없다. 출발점부터가 주거침입이며, 그 순간 이미 범죄는 완성됐다. 주거침입은 그 자체로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고, 그에 맞선 피해자의 방어를 가해의 연장선으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 책임의 방향이 뒤바뀌는 순간, 법은 정의가 아니라 혼란의 원인이 된다.
법은 침입자의 변명보다 먼저, 침입이 발생한 공간이 어디였는지를 물어야 한다. 집이라는 마지막 경계선을 가볍게 여기는 사회는 결코 안전할 수 없다. 침문즉죄. 문을 넘는 순간 범죄는 이미 시작됐다. 그리고 그 문 안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저항은, 범죄가 아니라 인간의 본능이자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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