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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핵잠수함, 바다를 넘어 국가전략의 심장으로

[사설] 핵잠수함, 바다를 넘어 국가전략의 심장으로
미 해군 핵추진 잠수함 미시건함이 지난 2017년 4월 칼빈슨 항공모함과 함께 한반도 해역으로 전개해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핵무기는 탑재하지 않았지만 특수부대를 침투시키는 장치를 달고 있다. / (사진제공=미 해군)

대한민국이 마침내 핵추진 잠수함 개발에 착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국방부를 중심으로 외교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유관 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 사업단 구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단일 무기체계 사업으로는 유례없는 규모이자, 한반도 안보지형의 새 방향을 가늠할 중대 전환점이다.

핵추진 잠수함은 단순한 군사 장비가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방패’이자, 핵 위협을 억제하는 전략적 균형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재래식 디젤 잠수함이 수 주간의 작전 능력에 머문다면, 핵잠수함은 수개월간 물속에서 은밀히 작전하며, 전 세계 해역 어디든 신속히 접근할 수 있다. 적이 탐지하기도, 예측하기도 어려운 ‘심해의 그림자’로서, 평시에는 억제력으로, 유사시에는 보복 능력으로 기능한다.

군 당국은 배수량 5천t급 이상 핵잠수함을 2030년대 중반 이후 최소 4척 이상 건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1척당 건조비는 3조원을 상회하고, 4∼6척 확보 시 총 건조비는 12조∼18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여기에 설계·개발·시험평가 비용 등을 더하면 총사업비는 20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막대한 비용이지만, 이 투자는 단순히 ‘무기 도입’이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의 업그레이드에 가깝다.

핵잠수함 확보는 기술·외교·재정이 얽힌 복합 난제다. 대형 잠수함 설계와 소형 원자로 개발, 그리고 연료로 사용될 농축 우라늄 확보를 위한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혹은 신규 협정 체결이 필수적이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추진 잠수함’ 연료 공급 허가를 요청했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하루 만인 30일 이를 승인했다.
미국이 최우방국인 영국 외에는 극비로 취급해온 핵잠수함 기술을 한국에 공유하기로 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이는 한미 간 전략적 신뢰의 수준이 한층 심화됐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안보 파트너로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제사회의 시선이 한국으로 쏠리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는 단순한 외교 성과를 넘어선 필연의 과제다. 북한은 이미 핵탄두를 소형화하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중국은 원자력 잠수함 전력을 급속히 확대하며 서태평양 전역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고,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젤-전기 잠수함 전력을 운용 중이다. 호주는 미국과 영국의 기술 지원을 받아 2030년대 초 핵잠수함을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동북아 해양 안보 구도 속에서 한국만이 재래식 전력에 머문다면, 전략적 균형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핵잠수함은 단순히 ‘보유’가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핵 억제 구조의 자주적 완성, 나아가 미래 해양전략의 주도권 확보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의 확장억제에 의존해왔지만, 이제는 스스로의 억제력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무기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의지와 자존의 문제다.

물론 사업 추진에는 투명성과 국민적 신뢰가 필요하다. 과거 일부 정부가 비밀리에 핵잠수함 개발을 시도하다 중단된 사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는 공개적 절차와 명확한 목표 아래 추진돼야 한다. 국제 비확산 체제를 존중하면서도 국가 이익을 지킬 수 있는 절묘한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 ‘강한 군사력 위의 평화’, 그것이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전략적 좌표다.

핵추진 잠수함은 단순한 철의 덩어리가 아니다. 그것은 바다를 지배하는 기술이자, 억제의 철학이며, 자주국방의 상징이다. 심해를 가르는 그 엔진의 굉음 속에는 단지 추진력이 아니라 국가의 결의와 미래의 약속이 담겨 있다. 핵잠수함의 함미가 파도를 가르는 순간, 그것은 곧 대한민국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소리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깊은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그 길 끝에는, 진정한 자주와 평화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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