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 자체에는 적잖은 국민이 동감하고 있다.
한미 동맹을 다시 되살리고 파탄 지경이었던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또한 노동·교육·의료·연금 개혁을 하겠다는 의지엔 반신반의 하면서도 옳은 방향인 것 같다는 생각에 많은 국민들이 최소한 반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나만 옳은 길로 가면 국민들이 알아줄 것이라 판단해온 것은 지극히 오산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번 총선에서 그대로 결과로 드러났다.
이번 선거판의 화두는 ‘정권심판론’이었다. 민주당은 대파를 흔들며, 김건희 여사 문제를 다시 들추어내며 선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정권심판론의 불씨를 되살리고 되살렸다.
정권심판론이 선거에서 야당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특별하게 정부의 큰 정책 실패나 권력형 비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타고난 성품과 평생의 경험이 합쳐진 결과물이겠지만 그 동안 사회 생활에서 윤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카리스마’가 국민들에겐 오히려 반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에 이어 대통령까지, 그의 뚝심과 카리스마로 자연스럽게 주변에 모여든 우군들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었을 결과물일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근엄한 아버지’보단 ‘자상한 어머니’에 이끌리기 마련이란 점을 윤 대통령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대통령이 추진하는 일이 옳다해도 정치에 깊게 관여하지 않는 국민들에겐 나의 삶과 무관한 일이란 것 또한 알려주는 사람이 지근거리에 있지 않았다.
결국 윤 대통령은 국제·외교 등 거대담론엔 강할지 모르지만 국민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데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세조정 능력은 0점이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국민의힘은 보수우파에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다.
우리나라 총선은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가 강하다. 결국 대통령의 지지율만큼 표가 나온다.
특히 국민들의 다수는 그 동안의 경험으로 지역에 진보 계열 후보가 당선되든 보수 계열 후보가 당선되든 이들이 지역 유권자 입 안의 혀처럼 원하는대로 해줄 것이란 점을 알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재개발·재건축에 호의적이지 않았어도 당장 지역 내 이슈가 재개발·재건축인 곳의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나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반대하며 이 동네에서만은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집권 후 2년을 보면 윤 대통령은 국민 대다수가 명문대를 나오고 사법고시에 패스할 수준의 지적 역량을 갖고 있으며 미래를 몇 단계 내다보며 판단하는 통찰력 있는 주체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다. 대다수 국민은 부초처럼 이리 저리 떠밀리며 이 말 저 말에 솔깃한 존재일 뿐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유권자가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윤석열 후보와의 표 차이가 고작 20만 표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보수층도 많았다. 이 대표가 어느 정도 득표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그럼에도 ‘이게 말이 되나’ ‘어떻게 저렇게 많은 국민들이 이 대표에게 표를 준거지’라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냉엄한 대한민국의 현실이었고 윤 대통령은 비록 승리했지만 대선 성적표를 받아 들고 2년 동안 철저한 분석을 통해 일단 표를 얻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간파하고 있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2년은 충분한 시간이었다.
‘불법과 타협 없다’ ‘원칙과 타협 없다’ ‘의사증원 2000명 추진, 타협 없다’
다 옳은 말이다. 당연히 국가가 미래를 향해 제대로 나가려면 타협 없이 추진해야 할 덕목이다.
하지만 핵심으로 들어가면 결국 여당이 과반 의석을 얻어야만 확실하게 법제화를 통해 가능한 것들이다. 단순히 대통령의 적극적인 의지만으론 세상의 부조리와 편법·불법을 줄여 나갈 수 없다.
윤 대통령이 정무적인 감각이 있었다면 2022년 당선과 함께 2년 뒤에 닥칠 총선에서 여당의 과반의석 확보가 비공식적인 1순위 국정 과제가 되었어야 한다. 2년 내내 180여석에 달하는 범야가 장악한 의회 권력으로부터 시달리면서도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자기 의무를 방기한 꼴밖에 안된다.
또한 윤 대통령이 한 가지 잊은게 있다. 보수 세력이 절대 윤 대통령의 우군만은 아니란 사실이다. 보수는 공과를 떠나 보수의 아이콘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감옥에 보내는데 최선봉에 섰던 윤 대통령을 용서한 적이 없다. 보수층은 당시 민주당의 후보로 나온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는 의욕이 더 컸기에 눈물을 닦으며 윤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한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2년 동안 펼친 일련의 국정을 보면 진보는 제쳐두고 보수 성향의 국민들조차 내 편으로 끌어 당긴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나만의 철학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종섭 대사를 임명하고 황상무 수석을 즉시 경질하지 않은 것은 오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들이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국민들의 귀는 종잇장보다 얇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내 사람을 끝까지 믿어 주는건 칭찬할만하지만 그것이 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 국정을 평화롭게 만들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꿈 꾸던 세상을 마음껏 펼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을까.
의사가 부족하고 기반 시설이 부족해 고통 받는 소외 지역을 챙기기 위해 매년 의사를 2000명 증원한다는 것은 숭고한 마음이나 그것이 선거를 직전에 두고 추진했어야 할만큼 절체절명의 주제였을까. 선거 전에 의사 증원에 대한 운은 띄울 수 있지만 정무적으로는 선거에서 여당이 과반을 차지한 후 힘 있게 추진했어야할 문제 아니었을까.
윤 대통령은 역사의 관점에서 성군(聖君)으로 남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매몰되어 정작 현실의 세계에서 망국의 군주로 기억될 것 같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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