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의 나라, 카자흐스탄』
김정민 지음 | 글로벌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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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나라’라는 표현을 카자흐스탄에 붙이는 순간, 많은 독자는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단군은 한반도의 시조이고, 카자흐스탄은 유라시아의 심장부에 놓인 중앙아시아 국가다. 지리도 역사도 멀다. 그러나 이 낯선 결합이 결코 공허한 상상이나 민족주의적 수사가 아님을 알게 된다. 신화는 때로 국경보다 오래되고, 길은 지도보다 먼저 존재했다.
이 책은 단군 신화를 ‘기원 서사’로만 읽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이동과 확산, 교류와 혼종의 이야기로 해석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 곰과 인간의 변신, 홍익인간이라는 통치 이념은 고정된 한반도의 이야기라기보다, 유라시아 전역에 널리 분포한 샤머니즘·천손(天孫) 신화의 한 변주로 제시된다. 저자가 시선을 두는 곳이 바로 카자흐스탄이다. 알타이 산맥과 초원 지대, 그리고 그곳을 오간 유목민의 길 위에서 단군 신화의 원형적 요소들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카자흐스탄은 ‘길의 나라’다. 실크로드의 동서가 만났고, 말과 활, 철과 신앙이 교차했다. 책은 알타이 사얀 지역의 고대 유물과 신화, 토템 신앙을 하나씩 호출하며 단군 신화와의 닮은꼴을 짚는다. 하늘 숭배, 곰·늑대 토템, 천신과 인간의 결합, 공동체를 이끄는 도덕적 명제까지 이 유사성은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촘촘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거기서 왔다”는 단정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길 위에 있었다”는 가능성이다.
이 책의 미덕은 과도한 혈연주의를 경계한다는 데 있다. 단군을 ‘민족의 순혈’로 세우지 않고, ‘문명의 접속점’으로 읽는다. 카자흐스탄을 ‘조상의 땅’으로 소유하려 하지 않고, ‘기억의 공명 공간’으로 존중한다. 그래서 서술은 조심스럽고, 증거 제시는 겸손하다. 고고학·언어학·민속학의 성과를 빌리되, 단정 대신 질문을 남긴다. 신화는 증명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장이라는 태도가 일관된다.
동아시아 중심의 역사관을 흔드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한반도의 형성은 고립의 결과가 아니라 이동의 축적이었다는 주장, 국가 이전에 네트워크가 있었고 정착 이전에 왕래가 있었다는 관점은 오늘의 한국 사회에도 의미심장하다. 폐쇄적 정체성이 아니라 개방적 기원을 상상할 때, 우리는 타자에 덜 공격적이고 스스로에 덜 불안해질 수 있다.
카자흐스탄에 사는 고려인의 역사도 책의 중요한 축이다. 강제 이주와 디아스포라의 기억은 단군 신화의 ‘홍익’ 정신과 묘하게 겹친다. 뿌리는 한곳에 있지 않고, 삶은 여러 땅에서 이어진다. 신화가 현재를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은 기원을 고정해서가 아니라 이동의 의미를 밝혀줄 때다.
결국 이 책은 묻는다. 단군은 어디에서 왔는가가 아니라, 단군은 무엇을 가능하게 했는가를. 카자흐스탄이라는 초원 위에서 단군 신화는 국경을 넘는 언어가 되고, 과거는 오늘의 대화가 된다. 신화는 박물관에 보관될 때보다 길 위에 놓일 때 더 오래 산다.
봉쌤의 책방에서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의 기원을 넓혀 주고, 우리의 정체성을 가볍게 해주며,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한 칸 확장해 주기 때문이다. 단군의 나라는 한반도에만 있지 않다. 길이 닿았던 곳마다, 기억이 이어진 곳마다, 신화는 나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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