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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가인권위원회가 흔들릴 때, 인권의 기준도 흔들린다

[사설] 국가인권위원회가 흔들릴 때, 인권의 기준도 흔들린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권력의 방향을 따라가는 기관이 아니다. 오히려 권력이 놓치거나 외면하는 자리에서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지켜야 하는 최후의 제도적 보루다. 그 수장이 누구인가, 그리고 그가 어떤 인식과 태도로 인권을 해석하는가는 곧 국가의 인권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둘러싼 일련의 논란은 결코 개인의 성향이나 일시적 갈등으로 치부할 수 없는 사안이다.

안 위원장은 법조인 출신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됐다. 그는 취임 초기부터 “인권은 진영의 소유물이 아니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겠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그 말과는 달리, 이후 인권위의 주요 결정과 위원장의 언행은 정치적 중립성과 인권의 보편성이라는 두 핵심 원칙 모두에서 거센 논쟁을 불러왔다.

논란의 출발점은 인권위가 특정 정치적 사안과 맞물린 ‘방어권 보장’ 안건을 상정·의결한 일이었다. 인권 보호의 원칙을 넘어 정치적 해석의 영역으로 들어갔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시민사회와 당시 야당은 인권위가 사실상 특정 권력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 사안은 고발로 이어져 현재 수사기관에서 판단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법적 결론과 별개로, 인권위의 판단이 사회적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의 본질이다.

내부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인권위 직원들이 위원장을 상대로 진정을 제기하고, 간부회의에서 위원장의 거취가 공식적으로 논의되는 상황은 이 기관의 역사에서도 이례적이다. 직원 대상 설문에서 다수의 구성원이 위원장의 사퇴를 원한다는 결과는,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조직 운영과 리더십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누적돼 있음을 보여준다. 인권을 다뤄야 할 기관 내부에서조차 신뢰가 무너졌다면, 외부를 향한 인권 권고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국제적 시선도 부담이다. 국내 시민사회가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에 문제를 제기하며 특별심사를 요청한 것은, 한국 인권위의 독립성과 기준이 국제적 검증대에 오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가인권기구의 등급과 평가는 단순한 명예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 국가가 인권을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국제적 신호이며, 외교·통상·국제 협력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안 위원장을 둘러싼 또 다른 쟁점은 차별금지, 소수자 인권, 성인지 감수성 등 현대 인권 담론의 핵심 영역이다. 위원장의 과거 발언과 태도는 인권 보호의 확대보다는 경계와 유보에 무게를 둔 것으로 비쳐졌고, 이는 인권위가 시대적 인권 과제에 뒤처지고 있다는 우려로 이어졌다. 인권은 정지된 개념이 아니라 사회 변화와 함께 확장돼 왔다. 국가인권위원회 수장이 이러한 흐름과 괴리돼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 자체가 기관의 위기다.

물론 위원장의 거취는 법과 절차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 여론이나 정치적 압박에 따라 좌우돼서도 안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논란이 단순히 ‘버틸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회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는 점이다. 인권위는 권위로 존립하는 기관이 아니라 신뢰로 존재하는 기관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방어적 태도가 아니다. 위원장은 제기된 의문과 비판에 대해 보다 투명하고 책임 있는 설명을 내놓아야 하며, 정부 역시 인권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제도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인권의 이름으로 신뢰를 잃는 일만큼 국가에 치명적인 손실은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다시 인권의 기준점으로 서기 위해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 이제 그 질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top_tier_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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