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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쌤의 책방] 난세의 생존철학, ‘후흑(厚黑)’의 통치학

[봉쌤의 책방] 난세의 생존철학, ‘후흑(厚黑)’의 통치학
《후흑학(厚黑學)》-이종오 지음, 신동준 편역 (사진제공=인간사랑)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도덕은 힘을 잃고 현실은 냉혹해진다. 《후흑학(厚黑學)》은 바로 그런 난세의 본질을 꿰뚫는 책이다. 중국 근대 사상가 이종오(李宗吾)가 1910년대 초반에 쓴 이 저서의 핵심 개념은 ‘후흑(厚黑)’, 곧 ‘면후(面厚)·심흑(心黑)’, 즉 “얼굴은 두껍고, 마음은 검다”라는 도발적인 개념으로 권력과 인간관계의 실상을 해부한다. 제목부터가 도덕적 금기를 깨뜨리지만, 그 내면에는 인간 사회의 냉혹한 진실에 대한 통찰이 숨어 있다. 출판사 인간사랑에서 신동준 역으로 출간된 이 책은, 단순한 처세서가 아니라 시대를 꿰뚫는 ‘통치학의 교본’이자 ‘권력의 심리학’으로 읽힌다.

이종오는 인간 사회를 “이성보다 이익이 지배하는 전쟁터”로 규정했다. 그는 도덕이나 선의가 아니라, 냉철한 계산과 강인한 의지가 권력을 쟁취하게 한다고 보았다. ‘후(厚)’는 곧 부끄러움을 모르는 담대함, ‘흑(黑)’은 양심을 넘어선 결단력을 뜻한다. 이 두 가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난세에 생존하고 성공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얼핏 듣기에 파렴치하거나 냉혈한처럼 보이지만, 이종오의 의도는 단순히 ‘악’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인간의 위선과 허위 도덕을 벗겨내고, 권력의 세계가 작동하는 ‘실제의 법칙’을 폭로하려 했다.

중국 사상사에서 《후흑학》은 고립된 저술이 아니다. 춘추전국시대 이후로 등장한 문헌 가운데, 당나라 중엽 조유(趙蕤)의 《장단경(長短經)》, 명나라 말기의 이탁오(李卓吾)가 쓴 《장서(藏書): 읽고 헛간에 넣어둬라》와 《분서(焚書): 읽고 불에 던져버려라》, 그리고 청말의 이종오가 저술한 《후흑학(厚黑學)》을 일컬어 ‘기서(寄書)’라 부른다. 이들 저서는 모두 전통적인 왕도(王道) 대신 패도(覇道)의 관점에서 역사를 재해석하며, 성현 중심의 도덕 질서에 의문을 던진 작품들이다. 이종오의 《후흑학》은 그 흐름의 정점에서, 인간 본성의 실체와 권력의 냉혹한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책의 초반부는 ‘후흑’의 개념을 역사적 인물들을 통해 설명한다. 유방, 조조, 제갈량, 당태종 등 중국사의 영웅들이 그 예로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겉으로는 도덕과 충의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냉정한 판단과 비정한 결단을 통해 권력을 잡았다. 이종오는 이를 “성인의 길은 후흑의 길과 다르지 않다”고 표현한다. 성현과 위인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의 후흑을 얼마나 정교하게 포장했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통찰은 인간을 이상화하기보다, 인간의 본성을 직시하는 냉철한 시선으로 다가온다.

중반부로 갈수록 저자는 ‘후흑’을 단순한 술수로 오해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진정한 후흑은 타인을 해치는 음모가 아니라, 큰 도(道)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는 기술에 가깝다. 즉, 목적을 위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외부의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단단함이다. 이는 오늘날 리더십과 조직경영, 정치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덕목이다. 지도자는 때로 냉혹한 결단을 내려야 하고,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후흑학’은 도덕의 부정이 아니라, 도덕의 실천을 위한 현실적 지혜로 해석할 수 있다.

학오(學吾) 故신동준(申東埈)박사

역자는 원문의 풍자와 논리적 직설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현대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옮겼다. 고전적 문체의 생동감과 함께, 동서양의 통치 철학을 아우르는 해석이 곳곳에 녹아 있다. 해설은 단순 번역을 넘어, 후흑학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한비자의 법가사상, 그리고 공자의 인(仁) 개념과 비교하면서 현대적 의미를 복원한다. 덕분에 이 책은 단순히 중국 근대의 유머러스한 풍자서가 아니라, 동서양 권력철학의 흐름을 잇는 중요한 사상서로 자리 잡는다.

오늘날의 정치와 사회는 ‘후흑’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덕적 명분을 내세운 자들이 실상은 탐욕과 계산으로 움직이고, 정의를 외치는 이들조차 기회주의의 덫에 걸린다. 그런 현실에서 《후흑학》은 인간의 위선을 직시하게 하며, 권력의 본질을 냉정하게 돌아보게 한다. 동시에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얼마나 후(厚)하며, 얼마나 흑(黑)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권모술수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과 현실 사이의 균형을 찾으라는 도전이다.

《후흑학》은 시대가 변해도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권력과 성공을 논하지만, 그 본질은 인간의 욕망과 한계에 대한 통찰이다. 위선적 도덕이 난무하는 시대일수록, 이 책은 불편할 만큼 진실하다. 결국 ‘후흑’이란 악이 아니라, 세상을 이기는 냉철한 용기이자, 인간을 이해하는 깊은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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