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지적 도발 우려 상존
협상 테이블 유도 포석…내부 결속 목적도
최근 연이은 무력 시위와 한국에 대한 전례 없는 적대적 발언을 두고 북한이 실제로 전쟁을 결심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으나 23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은 대다수 전문가가 그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최근 행보는 그들이 보여 주었던 일정한 패턴과 같으며 전쟁이나 전면전이 목표가 아니라 협상을 위한 포석으로, 이 과정에서 국지적 도발은 경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전쟁 준비하면서 러에 포탄 제공하나…정권 걸 도박 안해”
최근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시그프리드 헤커 교수는 북한 전문매체 38노스 기고문에서 “한반도 상황이 1950년 6월 초 이후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며 북한의 전쟁 위협이 통상적인 허세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최근 연이은 무력 시위 와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쟁을 피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위협적인 발언을 쏟아내는가 하면, 헌법에서 통일·동족 표현을 삭제하고 한국을 ‘제1의 적대국’이자 ‘불변의 주적’으로 명기하기로 하는 등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 헌법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기 위한 길을 열었다’며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명기되어 있다. 그럼에도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이 세운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까지 철거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그러나 BBC가 인터뷰한 아시아, 유럽, 북미 지역의 북한 전문가 7명은 누구도 전쟁 가능성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성현 조지 부시 미·중 관계 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다음 달 외국인에게 관광 문호를 재개방하기로 했고, 전쟁을 준비한다고 하면서도 비축해야 할 포탄을 러시아에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피터 워드 국민대학교 선임연구원은 한미 군사력의 우위를 언급하며 “전면전이 벌어지면 남한 국민이 꽤 죽겠지만 김정은과 그의 정권은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쟁 전문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한국 연구자 크리스토퍼 그린은 북한 정권이 목적 지향적인 마키아벨리즘을 따른다고 평가하고 “대격동의 가능성이 있는 전쟁에 정권 전체를 거는 것은 북한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전망했다.
“북한, 도발시 한국 대응 시험하려 할 것…우발적 확전 우려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국지적 도발에 나설 가능성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의 안킷 판다 선임연구원은 “한국 영토나 군대를 겨냥한 제한적 공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BBC는 2010년 11월 북한의 포격으로 해병대원 2명 등 4명이 사망한 연평도 포격 도발 사례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매파 지도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도발하면 몇 배로 응징하겠다”고 공헌 했기에 한국 정부의 대응 수위를 시험하고자 비슷한 도발을 저지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판다 선임연구원은 “북한도 한국의 보복 공격을 예상할 것”이라며 이에 따른 우발적인 확전 가능성을 경계했다.
“북한 근본 목표는 내부 권력 강화…미, 대화 나서야”
북한이 이처럼 위험한 계획을 추진하는 배경으로는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목적, 중국과 러시아의 뒷배, 국내 정치적 의도 등이 꼽힌다.
이성현 선임연구원은 “역사적으로 북한은 협상을 원할 때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도발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과 총선과 미국의 대선이 동시에 치러지는 올해를 두고 “김정은에게는 도발할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동과 우크라이나에 집중하는 사이 북한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것과 달리 과거 북한과 비핵화 협상 타결 직전까지 갔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도 북한이 기대하는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최근 무기 제공과 군사 기술 지원을 고리로 한 러시아와의 밀착,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 지원도 북한 정권의 대담성을 키웠을 수 있다.
판다 선임연구원은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을 고려할 때 현재 상황의 상당 부분은 자체 역량 및 지정학적 입지에 대한 북한의 자신감이 커진 결과”라고 말했다.
레이프 에릭 이슬리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 사람들은 점차 공산주의 북한이 남한과 비교해 열등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며 북한의 최근 전략을 “정권 생존을 위한 이념적 조정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그는 한국을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전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미사일 개발을 정당화하는 동시에, 북한 주민 사이에서 확산하는 한국 문화 소비에 대한 탄압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탈북자 인권단체 리버티 인 노스코리아의 박석길 디렉터는 “김정은은 얻을 것은 없고 모든 것을 잃을 거대한 도박인 전쟁을 원치 않는다”며 새로운 남북 정책의 근본적 목표가 내부 권력 강화라고 주장했다.
이성현 선임연구원은 “국제사회는 미국이 김정은과 대화하는 것을 그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그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으로만 비추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판을 막고 전쟁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면, 누구든 적국 지도자와의 만남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한결 같이 한국과 미국 그리고 동맹국들이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의 내부 사정과 국제 지정학적 상황을 동시에 살펴보는 것 역시 중요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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